주님을 만나면 얻게 되는 은혜(눅7:11-17)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1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인성으로 가실때 많은 무리가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주님과 동행한 많은 사람들은 큰 은혜를 체험한다. 바로 나인성과부의 죽은 아들이 예수님으로인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그 장면을 볼 수 없었겠죠? 이런 것은 돈을 준다고 구경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예수 떠나서는 절대 체험할 수 없는 일이다. ==>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 주님과 만남이 있는 사람은 늘 은혜가 있다./ 어떤 은혜인가?
■ 첫째, 주님을 만나면 인생의 결론이 달라진다.
본문에 나오는 나인성의 과부는 남편도 없는데, 이제 하나밖에 없는 독자 아들조차도 죽어버렸다.
여자에게 있어서 자녀는 생명 그 자체요, 삶을 살아갈 이유이다.
그런데 자녀가 죽었으니, 살수가 없는 것이다. 죽는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들을 묻으러 가는데, 중간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죽음의 행렬이 생명의 행렬로 바뀌게 되었다. 장례식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잔치 음식으로 변했다.
슬픔과 절망이 변하여 기쁨과 소망과 감사가 되었다. 끝난줄 알았는데,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을 만나면 인생의 결론이 달라진다.
▶일본 사람 중에 도모다까 시모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사형수였다.
일본 정부에서는 사형수들을 북해도 탄광으로 보내어 일을 하게 했다.
탄광에 가서 일하는 동안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에 사형수들은 기쁘게 탄광으로 일을 하러 갔다.
그래서 사형수 수천 명이 탄광에서 일을 했다. 시모지도 거기서 일을 하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면회를 왔다.
시모지는 어머니를 향해 화를 내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곳은 일본에서도 제일 남쪽 끝,
거기서도 배를 타고 몇 시간을 가는 작은 섬이었다. 거기서부터 무려 3,000리 길을 온 것이다.
허리가 굽어서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안 되는 어머니가 말이다.
요즘처럼 교통이 좋았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 온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구박을 하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그래 내가 돌아갈께, 그러나 이 보따리 하나는 받아라"하고 보따리를 놓고 갔다.
그 보따리를 들고 숙소로 돌아와서 열어 보니 성경이 들어 있다.
"어머니가 그 동안에 예수쟁이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재수 없다는 듯이 방구석에 성경을 내던져 버렸다.
며칠 지나다 보니 한방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한 장 한장 뜯어서 담배를 말아 피우는 것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시모지의 마음이 달라졌다.
'어머니가 3,000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전해 주고 간 성경책인데 이 놈들이 담배를 말아 피워'
야단을 치고는 재수 없다고 짚어 던졌던 성경책을 빼앗았다.
어머니는 뭐가 좋길래 성경에 빠져 버렸는가 싶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계속 읽어 나가는데, 눈을 떼지못하였고, 성경에 빨려 들어갔다.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성경만 읽었다.
어느날, 성경을 가지고 탄광 갱도 속에 들어가 일을 했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빨리 먹고 다른 친구들은 모여서 떠들고 있을 때 시모지는 귀찮아서 다른 갱도로 옮겨갔다.
그 곳에서 성경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바로 자기가 일하고 있던 갱도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함께 일하던 37명이 몰살해서 죽었다.
시모지는 거기에서 살아났다. 살아난 시모지는 '하나님이 날 살려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고 모범수가 되었다.
사형수였는데, 감형이 되고 또 감형이 되어서 결국은 살아서 출옥했다.
살아나와보니 어머니는 벌써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그 동안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속태웠던 것을 후회하면서 양로원을 세웠다.
양로원만 세운 것이 아니라 또 돈을 벌어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6개를 세웠다.
일본 정부가 주는 교육자 대상을 받았다. 사회사업가에게 주는 대상도 받았다. 77살에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사형수가 이런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었는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인생의 결론이 달라진다.
질병때문에, 사업때문에, 미래때문에 불안해하고, 절망하는 사람,
실패 때문에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만 만나면 인생의 결론이 달라진다. 아멘.
■ 둘째, 주님을 만나면 복된 소문의 주인공이 된다.
▶한 해 동안 우리나라가 건강식품을 수입하는데 쓴 돈이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DHEA’란 약은 불로장생한다고 소문이 나 있다.
미국에서 파는 가격보다 15배나 높은 가격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웃돈을 주고 산다.
왜 그런가? 소문이 잘 나서 그러는 것이다./
가게도 소문만 잘나면 잘된다./교회도 소문이 잘나야 부흥한다./좋은 소문이 있는 교회와 가정이 되길 소망한다.
본문 16-17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예수님께서 나인성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16절 후반부에“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에서 자기 백성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바로 나인성 과부의 가정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나인성과부의 가정은 어떤 소문을 가지고 있었을까?
“저 가정은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가정, 저주받은 가정”
그런데 주님을 만난 후에는 소문이 달라졌다. 이제 어떤 소문이 나는가?
"저 집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가정"이라는 소문이 나는 것이다.
또 그 가정을 통해 주님의 은혜가 널리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올한해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저 가정을 돌보아 주시는 가정이야”“저 가정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
“저 가정은 저렇게 불행하더니, 끝장난줄 알았더니 저렇게 천국같은 가정이 되었네”
==> 이런 복된 소문이 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주님을 만나면 복된 소문의 주인공이 된다.
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12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머니에게 주시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
17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1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인성으로 가실때 많은 무리가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주님과 동행한 많은 사람들은 큰 은혜를 체험한다. 바로 나인성과부의 죽은 아들이 예수님으로인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그 장면을 볼 수 없었겠죠? 이런 것은 돈을 준다고 구경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예수 떠나서는 절대 체험할 수 없는 일이다. ==>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 주님과 만남이 있는 사람은 늘 은혜가 있다./ 어떤 은혜인가?
■ 첫째, 주님을 만나면 인생의 결론이 달라진다.
본문에 나오는 나인성의 과부는 남편도 없는데, 이제 하나밖에 없는 독자 아들조차도 죽어버렸다.
여자에게 있어서 자녀는 생명 그 자체요, 삶을 살아갈 이유이다.
그런데 자녀가 죽었으니, 살수가 없는 것이다. 죽는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들을 묻으러 가는데, 중간에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죽음의 행렬이 생명의 행렬로 바뀌게 되었다. 장례식을 위해 준비한 음식이 잔치 음식으로 변했다.
슬픔과 절망이 변하여 기쁨과 소망과 감사가 되었다. 끝난줄 알았는데,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을 만나면 인생의 결론이 달라진다.
▶일본 사람 중에 도모다까 시모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사형수였다.
일본 정부에서는 사형수들을 북해도 탄광으로 보내어 일을 하게 했다.
탄광에 가서 일하는 동안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에 사형수들은 기쁘게 탄광으로 일을 하러 갔다.
그래서 사형수 수천 명이 탄광에서 일을 했다. 시모지도 거기서 일을 하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면회를 왔다.
시모지는 어머니를 향해 화를 내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살고 있는 곳은 일본에서도 제일 남쪽 끝,
거기서도 배를 타고 몇 시간을 가는 작은 섬이었다. 거기서부터 무려 3,000리 길을 온 것이다.
허리가 굽어서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안 되는 어머니가 말이다.
요즘처럼 교통이 좋았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아들을 찾아 온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구박을 하자 어머니가 아들에게 "그래 내가 돌아갈께, 그러나 이 보따리 하나는 받아라"하고 보따리를 놓고 갔다.
그 보따리를 들고 숙소로 돌아와서 열어 보니 성경이 들어 있다.
"어머니가 그 동안에 예수쟁이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재수 없다는 듯이 방구석에 성경을 내던져 버렸다.
며칠 지나다 보니 한방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을 한 장 한장 뜯어서 담배를 말아 피우는 것이다.
그것을 보는 순간 시모지의 마음이 달라졌다.
'어머니가 3,000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서 전해 주고 간 성경책인데 이 놈들이 담배를 말아 피워'
야단을 치고는 재수 없다고 짚어 던졌던 성경책을 빼앗았다.
어머니는 뭐가 좋길래 성경에 빠져 버렸는가 싶어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계속 읽어 나가는데, 눈을 떼지못하였고, 성경에 빨려 들어갔다.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성경만 읽었다.
어느날, 성경을 가지고 탄광 갱도 속에 들어가 일을 했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점심을 빨리 먹고 다른 친구들은 모여서 떠들고 있을 때 시모지는 귀찮아서 다른 갱도로 옮겨갔다.
그 곳에서 성경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다음 순간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바로 자기가 일하고 있던 갱도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함께 일하던 37명이 몰살해서 죽었다.
시모지는 거기에서 살아났다. 살아난 시모지는 '하나님이 날 살려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고 모범수가 되었다.
사형수였는데, 감형이 되고 또 감형이 되어서 결국은 살아서 출옥했다.
살아나와보니 어머니는 벌써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돈을 열심히 벌어서 그 동안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고 속태웠던 것을 후회하면서 양로원을 세웠다.
양로원만 세운 것이 아니라 또 돈을 벌어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6개를 세웠다.
일본 정부가 주는 교육자 대상을 받았다. 사회사업가에게 주는 대상도 받았다. 77살에 세상을 떠났다.
어떻게 사형수가 이런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었는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주님을 만나는 사람은 인생의 결론이 달라진다.
질병때문에, 사업때문에, 미래때문에 불안해하고, 절망하는 사람,
실패 때문에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야 한다.
==>주님만 만나면 인생의 결론이 달라진다. 아멘.
■ 둘째, 주님을 만나면 복된 소문의 주인공이 된다.
▶한 해 동안 우리나라가 건강식품을 수입하는데 쓴 돈이 1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DHEA’란 약은 불로장생한다고 소문이 나 있다.
미국에서 파는 가격보다 15배나 높은 가격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웃돈을 주고 산다.
왜 그런가? 소문이 잘 나서 그러는 것이다./
가게도 소문만 잘나면 잘된다./교회도 소문이 잘나야 부흥한다./좋은 소문이 있는 교회와 가정이 되길 소망한다.
본문 16-17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예수님께서 나인성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16절 후반부에“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에서 자기 백성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바로 나인성 과부의 가정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나인성과부의 가정은 어떤 소문을 가지고 있었을까?
“저 가정은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가정, 저주받은 가정”
그런데 주님을 만난 후에는 소문이 달라졌다. 이제 어떤 소문이 나는가?
"저 집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는 가정"이라는 소문이 나는 것이다.
또 그 가정을 통해 주님의 은혜가 널리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올한해 여러분의 가정에도 이러한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저 가정을 돌보아 주시는 가정이야”“저 가정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
“저 가정은 저렇게 불행하더니, 끝장난줄 알았더니 저렇게 천국같은 가정이 되었네”
==> 이런 복된 소문이 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주님을 만나면 복된 소문의 주인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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