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쓰임받는 일꾼이 되려면(행18:5-8)
어떤 엄마가 태기가 있어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데리고 산부인과에 갔다. 진찰을 마치고 나오는 엄마를 보고 딸이 물었다. "엄마 아기가 생긴 거야?" "그렇단다. 네게 동생이 생겼어." "남자야, 여자야?" "남자래." "이야, 신난다. 엄마 전화 줘봐. 아빠에게 전화하게." 딸이 엄마의 전화를 받아들고 아빠에게 소식을 전했다."아빠, 엄마에게 남자가 생겼어."==> 아빠가 이 말을 믿었을까?
===> 아이의 말 한마디에 믿음이 무너지면 안된다.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도 말 한마디에 넘어질때가 많죠? 그런데 우리의 믿음을 넘어뜨리는 것은 말뿐이 아니다. //신앙생활하다보면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는 것이 너무 많다. 돈이 떨어지면 믿음도 떨어지고, 건강이 떨어지면 믿음도 떨어진다. 자식이 대학에 떨어져도 믿음이 함께 떨어진다. 이러면 안되죠? 이런 것에 흔들리는 성도가 돼서는 안된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은 믿음의 일꾼이다. 그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일꾼으로 쓰임받았다. 믿음의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
■ 첫째, 믿음의 일꾼은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다.(5)
사람은 모두 무엇인가에 붙잡혀 살고 있다. //TV 연속극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 있다. - 매일 TV보지 않으면 안돼! //운동에 붙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 매일 운동하지 않으면 안돼! //쇼핑에 붙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 내일 쇼핑하지 않으면 안돼! //술에 붙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 매일 술을 마시지 않은 안돼! //담배에 붙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식후에 담배 피우지 않으면 안돼! 사람이 무엇에 사로 잡혀 있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사도는 말씀에 붙잡혔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울을 붙잡은 것이다. 바울이 말씀을 붙잡은 것이 아니다. 말씀에 붙잡혀야 믿음으로 살수있다.//귀신에 붙잡히면 귀신이 시키는 대로 한다. 마찬가지로 말씀에 붙잡히면 말씀이 시키는 대로한다. 가라 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서고, 하라 하면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한다. 말씀에 붙잡혀야 믿음으로 살수 있다.
▶젊은 시절 방탕 속에서 세월을 보내던 어거스틴은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 갑자기 성경을 펴서 읽으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즉시 성경을 펼친 곳이 로마서 13장 14절이었다.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이 말씀을 통하여 어거스틴은 새사람이 되었다. 이후 그는 중세에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성자가 되었다. 말씀에 붙들리면 누구든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설교를 듣는 성도의 자세를 몇가지로 분류할수 있다. 가자미형이 있다. 가자미는 눈이 한쪽으로 돌아갔죠? 가자미형은 설교를 들으면‘아이유, 오늘따라 남편이 안왔네. 참 안된다. 안돼. 이 말씀을 들어야하는데.’자기는 말씀에 붙잡힐 생각이 없고 남이 말씀에 붙잡히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 다음에 불독형이 있다. 불독은 물려고만 하죠? 목사가 설교를 하면‘아이구, 저 목사가 또 날 치네!’그러나 목사가 할 일이 없어서 그 한사람을 상대로 말씀을 준비하는가? 그런데 예배끝나면 한 일곱여덟명은 찔렸다고 죄송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죠. "아, 나를 향한 말씀이구나!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사용해서, 내 잘못을 지적하시는구나." 말씀을 내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야 말씀에 붙잡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그 말씀을 머리에 새기고 완전히 그 말씀에 완전히 사로잡혀야 한다. 어떻게 하면 말씀에 붙잡힐수 있는가? 말씀을 많이 듣고 읽어야죠. 말씀을 읽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데 어떻게 말씀에 붙들릴수 있는가? 그럴수는 없다.
===> 말씀은 우리 삶의 안내서이자, 생활지침서이다. 말씀이 하라 하면 하고, 하지말라고 하면 하지말라.
===> 말씀에 붙들린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생활을 할수 있다. 다른 것에 붙잡히지 말고, 오직 말씀에 붙잡히기 바란다.//말씀에 붙잡히자.
■둘째로, 믿음의 일꾼은 낙심하지 않는 사람이다.(6-8)
낙심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마사스'이다. `용해시키다', `황폐케 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낙심은 마음과 육체를 황폐하게 할뿐만 아니라, 인생을 황폐화시킨다.//또 낙심은 헬라어로는 `카코스'라고 한다. 이는 `무가치한, 해로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낙심은 인생에 있어 어느 하나 도움이 될 만한 요소가 없다. 오히려 해롭다. 그래서 성경은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바울사도가 고린도에서 유대인만 모이는 회당에 들어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열심히 전도했다. 그런데 고린도 회당에 모이는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거부하고 싫어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바울을 대적하고 훼방하고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도저히 거기서는 더 이상 전도를 못할 지경이었다. 사실 이러면 낙심되죠? 정말 좌절하고 실망할 만한 상황이다. ==> 엘리야선지자였다면 도망쳤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거기서 말씀을 가르쳤다. 왜요? 그는 낙심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바울이 낙심하지 않고, 장소를 옮겨 계속 말씀을 전하자, 결국 많은 고린도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된다. 또한 그날 밤에 환상중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신다. 이거 가만보면 꼭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바울과 엘리야의 다른 점은 엘리야는 상황을 보고 낙심했지만,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낙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격려의 말씀을 주신다. 또한 많은 열매를 주신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라. 낙심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항상 더 큰 일, 더 좋은 일이 생긴다.
▶김홍렬 해군 참모총장은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시골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교도 들어갈 실력이라고 했는데 집이 가난했기에 해군사관학교를 2등으로 들어갔다. 졸업은 수석으로 했다. 그는 군인으로서 정직하게 행동했고 부하들을 사랑했다. 모두가 덕 있는 사람으로 그를 인정했기에 진급에서 한번도 누락이 된 적이 없이 해군 소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전혀 진급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는 군에서 진급을 하려면 뇌물과 출신 배경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때였다. TK라고 불렸던 세력들이 군에서도 거의 모든 요직을 독점함으로 인해 진급비리가 행해졌다. 후배가 중장으로 진급을 하였고 자기는 누락이 되었다. 옷을 벗을 것인가? 견딜 것인가? 참으로 여러 생각이 나고 마음이 괴로웠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았다. 그런데 다음에도 또 누락이 되고 말았다. 발표날이 수요일이었는데 누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요예배에 갔다. 그는 승진이 누락되는데도 불구하고 낙심이 되었을텐데도 믿음으로 참고 주님만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뇌물사건이 터지자, 김종호 해군 참모총장이 물러나고 소장에 불과한 김홍렬장군이 자기 위로 중장 여섯 명을 제치고서 해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낙심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낙심이 될만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 오히려 좋은 길을 열어주신다.
▶청주에 이 집사님이라는 분이 작은 식당을 개업했는데, IMF가 터지면서 장사가 잘 안되니까 낙심한 남편은 매일 술만 마셨다. 그렇지만 이집사님은 낙심하지 않았다. 바쁠 때는 교회에 자주 못 나갔지만 이제는 장사도 안되고 손님도 없으니까 시간 많을 때 교회에 나가서 기도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금요철야에 나가서 기도를 하는데, 목사님이 마침 설교 시간에“장소가 나빠서 장사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해서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을 가지십시오.”라고 설교하셨다.‘맞아, 그동안 내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을 갖지 못했어.’이 집사님은‘하나님, 그동안 장사가 잘될 때는 교만하고, 장사가 안 될 때는 불평했던 것을 용서하옵소서.’하고 회개하며 기도했다. 그 후로 계속해서 작정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느날 TV를 통해서 IMF 극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어려울 때는‘박리다매’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집사님도 그 프로를 보고 이윤은 적어도 많이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가 1900원짜리 해장국을 만들어서 팔면 어떻겠냐고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며 반대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또 기도했다.‘하나님, 이 방법이 어떻겠습니까? 저에게 결단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그러자 하나님께서는‘내가 너에게 넘치게 채워 주리라’는 확신을 주셨다. 그래서 집사님은 그 다음날부터 현수막을 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많은 손님들이 밖에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안에서는 4인용 식탁에 6명씩 앉아서 식사를 했단다. 평상시에는 300-400그릇, 잘 될때는 400-600그릇이나 팔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많은 손님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처음에 2명이던 직원도 8명으로 늘어났다. 하여튼 잘먹고 잘 살았단다.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결국 은혜를 주신다.
■ 옛 속담 중에 "당나귀가 쓰러지는 건 맨 마지막에 올려놓은 모자 하나 때문이다." 라는 말이 있다. 짐 싣는 당나귀가 자기 힘에 넘치는 짐을 지고 억지로 버티고 서 있다. 짐을 다 올린 주인이 땀을 닦으려고 모자를 벗어 당나귀 위에 올려놓는 순간 당나귀가 가벼운 모자 하나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사람들은 '그깟 모자 하나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 그것 때문에 쓰러질까?' 라고 생각하지만, 당나귀가 쓰러진 것은 모자 때문이 아니라 그 전까지 당나귀가 지고 있던 짐들의 무게 때문이다. ===> 제가 갑자기 찾아온 허리통증으로 며칠간 출근을 하지 못했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갑자기 온 것이겠는가? 계속되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눌리고 눌리다보니 결국 어느 시점에 펑하고 터지게 되고, 더 이상 견딜수 없게 되어 드러눕게 것이다.
==> 일주일 동안 누워있으면서 걱정도 되고, 낙심도 되었다. 건강이 왜 이 모양이냐? 내가 지금 이렇게 누워있을 때가 아닌데, 지금 교회수첩도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누워있으려니까 참 불안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이 들었다. 교회는 누구 것인가? 하나님의 것이다. 누가 교회를 지키는가? 내가 지키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지킨다고 지켜서 그게 지켜진 적이 있는가? 없었다. 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신다.
▶한신교회 이중표목사님이 돌아가시기전에 이런 강의를 하신적이 있다. 목사들이 자빠져 자야 교회가 부흥된다.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마음이 있어야 교인을 대할때도 표정이 좋단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일주일을 누워서 쉬었다. 교회는 누가 지키는가? 독수리 오형제가 지키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지키신다.
//어젯밤에 박찬조집사님,현정옥집사님네 가정이 저희 집에 와서 제게 기도받고 오늘 홍콩으로 이사갔다. 원래 30일 넘어서 홍콩으로 이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사짐센터가 휴무이기 때문에 오늘밖에 안된다며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다. 기도해주면서도 마음이 또 낙심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또 마음을 주셨다. 교회는 누가 지킨다구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오늘정오쯤에 제 아내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하면, 이번주일에 유치부 교사들이 명절 때문에 다 한국에 들어가고, 주일에 교사가 딱 두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명절에 한국에 너무 많이 들어가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또 마음이 무거워지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는 누가 지킨다구요? 하나님이 지키신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다잡았어요./
===> 옆사람인사: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낙심말고 기도합시다.
===> 믿음의 일꾼이 되려면, 첫째로,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둘째,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붙들고 낙심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오늘 밤에 말씀에 붙들려 믿음으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좋은 길을 열어주실 줄을 믿고 기도하고, 응답이 있을 줄을 믿고 기도하자. ===>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어떤 엄마가 태기가 있어 유치원에 다니는 딸을 데리고 산부인과에 갔다. 진찰을 마치고 나오는 엄마를 보고 딸이 물었다. "엄마 아기가 생긴 거야?" "그렇단다. 네게 동생이 생겼어." "남자야, 여자야?" "남자래." "이야, 신난다. 엄마 전화 줘봐. 아빠에게 전화하게." 딸이 엄마의 전화를 받아들고 아빠에게 소식을 전했다."아빠, 엄마에게 남자가 생겼어."==> 아빠가 이 말을 믿었을까?
===> 아이의 말 한마디에 믿음이 무너지면 안된다. 우리가 신앙생활할 때도 말 한마디에 넘어질때가 많죠? 그런데 우리의 믿음을 넘어뜨리는 것은 말뿐이 아니다. //신앙생활하다보면 우리의 믿음을 떨어뜨리는 것이 너무 많다. 돈이 떨어지면 믿음도 떨어지고, 건강이 떨어지면 믿음도 떨어진다. 자식이 대학에 떨어져도 믿음이 함께 떨어진다. 이러면 안되죠? 이런 것에 흔들리는 성도가 돼서는 안된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은 믿음의 일꾼이다. 그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일꾼으로 쓰임받았다. 믿음의 일꾼은 어떤 사람인가?
■ 첫째, 믿음의 일꾼은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다.(5)
사람은 모두 무엇인가에 붙잡혀 살고 있다. //TV 연속극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 있다. - 매일 TV보지 않으면 안돼! //운동에 붙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 매일 운동하지 않으면 안돼! //쇼핑에 붙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 내일 쇼핑하지 않으면 안돼! //술에 붙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 매일 술을 마시지 않은 안돼! //담배에 붙잡혀 있는 사람이 있다.- 식후에 담배 피우지 않으면 안돼! 사람이 무엇에 사로 잡혀 있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사도는 말씀에 붙잡혔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바울을 붙잡은 것이다. 바울이 말씀을 붙잡은 것이 아니다. 말씀에 붙잡혀야 믿음으로 살수있다.//귀신에 붙잡히면 귀신이 시키는 대로 한다. 마찬가지로 말씀에 붙잡히면 말씀이 시키는 대로한다. 가라 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서고, 하라 하면하고, 하지 말라고 하면 안한다. 말씀에 붙잡혀야 믿음으로 살수 있다.
▶젊은 시절 방탕 속에서 세월을 보내던 어거스틴은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 갑자기 성경을 펴서 읽으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즉시 성경을 펼친 곳이 로마서 13장 14절이었다.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이 말씀을 통하여 어거스틴은 새사람이 되었다. 이후 그는 중세에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성자가 되었다. 말씀에 붙들리면 누구든지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설교를 듣는 성도의 자세를 몇가지로 분류할수 있다. 가자미형이 있다. 가자미는 눈이 한쪽으로 돌아갔죠? 가자미형은 설교를 들으면‘아이유, 오늘따라 남편이 안왔네. 참 안된다. 안돼. 이 말씀을 들어야하는데.’자기는 말씀에 붙잡힐 생각이 없고 남이 말씀에 붙잡히길 바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 다음에 불독형이 있다. 불독은 물려고만 하죠? 목사가 설교를 하면‘아이구, 저 목사가 또 날 치네!’그러나 목사가 할 일이 없어서 그 한사람을 상대로 말씀을 준비하는가? 그런데 예배끝나면 한 일곱여덟명은 찔렸다고 죄송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죠. "아, 나를 향한 말씀이구나! 인간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사용해서, 내 잘못을 지적하시는구나." 말씀을 내게 주시는 음성으로 들어야 말씀에 붙잡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그 말씀을 머리에 새기고 완전히 그 말씀에 완전히 사로잡혀야 한다. 어떻게 하면 말씀에 붙잡힐수 있는가? 말씀을 많이 듣고 읽어야죠. 말씀을 읽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데 어떻게 말씀에 붙들릴수 있는가? 그럴수는 없다.
===> 말씀은 우리 삶의 안내서이자, 생활지침서이다. 말씀이 하라 하면 하고, 하지말라고 하면 하지말라.
===> 말씀에 붙들린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생활을 할수 있다. 다른 것에 붙잡히지 말고, 오직 말씀에 붙잡히기 바란다.//말씀에 붙잡히자.
■둘째로, 믿음의 일꾼은 낙심하지 않는 사람이다.(6-8)
낙심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마사스'이다. `용해시키다', `황폐케 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낙심은 마음과 육체를 황폐하게 할뿐만 아니라, 인생을 황폐화시킨다.//또 낙심은 헬라어로는 `카코스'라고 한다. 이는 `무가치한, 해로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낙심은 인생에 있어 어느 하나 도움이 될 만한 요소가 없다. 오히려 해롭다. 그래서 성경은 `낙심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바울사도가 고린도에서 유대인만 모이는 회당에 들어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열심히 전도했다. 그런데 고린도 회당에 모이는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거부하고 싫어했다. 그러더니 마침내 바울을 대적하고 훼방하고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도저히 거기서는 더 이상 전도를 못할 지경이었다. 사실 이러면 낙심되죠? 정말 좌절하고 실망할 만한 상황이다. ==> 엘리야선지자였다면 도망쳤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울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거기서 말씀을 가르쳤다. 왜요? 그는 낙심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 바울이 낙심하지 않고, 장소를 옮겨 계속 말씀을 전하자, 결국 많은 고린도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된다. 또한 그날 밤에 환상중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 성에 내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신다. 이거 가만보면 꼭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상황과 비슷하지 않은가? 바울과 엘리야의 다른 점은 엘리야는 상황을 보고 낙심했지만, 바울은 낙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낙심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은 격려의 말씀을 주신다. 또한 많은 열매를 주신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말라. 낙심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항상 더 큰 일, 더 좋은 일이 생긴다.
▶김홍렬 해군 참모총장은 독실한 신앙인이었다. 시골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교도 들어갈 실력이라고 했는데 집이 가난했기에 해군사관학교를 2등으로 들어갔다. 졸업은 수석으로 했다. 그는 군인으로서 정직하게 행동했고 부하들을 사랑했다. 모두가 덕 있는 사람으로 그를 인정했기에 진급에서 한번도 누락이 된 적이 없이 해군 소장 자리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전혀 진급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는 군에서 진급을 하려면 뇌물과 출신 배경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때였다. TK라고 불렸던 세력들이 군에서도 거의 모든 요직을 독점함으로 인해 진급비리가 행해졌다. 후배가 중장으로 진급을 하였고 자기는 누락이 되었다. 옷을 벗을 것인가? 견딜 것인가? 참으로 여러 생각이 나고 마음이 괴로웠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며 참았다. 그런데 다음에도 또 누락이 되고 말았다. 발표날이 수요일이었는데 누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요예배에 갔다. 그는 승진이 누락되는데도 불구하고 낙심이 되었을텐데도 믿음으로 참고 주님만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뇌물사건이 터지자, 김종호 해군 참모총장이 물러나고 소장에 불과한 김홍렬장군이 자기 위로 중장 여섯 명을 제치고서 해군 참모총장이 되었다. 낙심하지 않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낙심이 될만한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 오히려 좋은 길을 열어주신다.
▶청주에 이 집사님이라는 분이 작은 식당을 개업했는데, IMF가 터지면서 장사가 잘 안되니까 낙심한 남편은 매일 술만 마셨다. 그렇지만 이집사님은 낙심하지 않았다. 바쁠 때는 교회에 자주 못 나갔지만 이제는 장사도 안되고 손님도 없으니까 시간 많을 때 교회에 나가서 기도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금요철야에 나가서 기도를 하는데, 목사님이 마침 설교 시간에“장소가 나빠서 장사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인정받지 못해서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을 가지십시오.”라고 설교하셨다.‘맞아, 그동안 내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을 갖지 못했어.’이 집사님은‘하나님, 그동안 장사가 잘될 때는 교만하고, 장사가 안 될 때는 불평했던 것을 용서하옵소서.’하고 회개하며 기도했다. 그 후로 계속해서 작정기도를 하고 있는데, 어느날 TV를 통해서 IMF 극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어려울 때는‘박리다매’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집사님도 그 프로를 보고 이윤은 적어도 많이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단가 1900원짜리 해장국을 만들어서 팔면 어떻겠냐고 남편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수지 타산이 안 맞는다며 반대하였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또 기도했다.‘하나님, 이 방법이 어떻겠습니까? 저에게 결단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그러자 하나님께서는‘내가 너에게 넘치게 채워 주리라’는 확신을 주셨다. 그래서 집사님은 그 다음날부터 현수막을 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많은 손님들이 밖에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안에서는 4인용 식탁에 6명씩 앉아서 식사를 했단다. 평상시에는 300-400그릇, 잘 될때는 400-600그릇이나 팔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많은 손님을 보내주셨다. 그래서 처음에 2명이던 직원도 8명으로 늘어났다. 하여튼 잘먹고 잘 살았단다.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리면 하나님께서 결국 은혜를 주신다.
■ 옛 속담 중에 "당나귀가 쓰러지는 건 맨 마지막에 올려놓은 모자 하나 때문이다." 라는 말이 있다. 짐 싣는 당나귀가 자기 힘에 넘치는 짐을 지고 억지로 버티고 서 있다. 짐을 다 올린 주인이 땀을 닦으려고 모자를 벗어 당나귀 위에 올려놓는 순간 당나귀가 가벼운 모자 하나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린다. 사람들은 '그깟 모자 하나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 그것 때문에 쓰러질까?' 라고 생각하지만, 당나귀가 쓰러진 것은 모자 때문이 아니라 그 전까지 당나귀가 지고 있던 짐들의 무게 때문이다. ===> 제가 갑자기 찾아온 허리통증으로 며칠간 출근을 하지 못했다. 죄송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게 갑자기 온 것이겠는가? 계속되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눌리고 눌리다보니 결국 어느 시점에 펑하고 터지게 되고, 더 이상 견딜수 없게 되어 드러눕게 것이다.
==> 일주일 동안 누워있으면서 걱정도 되고, 낙심도 되었다. 건강이 왜 이 모양이냐? 내가 지금 이렇게 누워있을 때가 아닌데, 지금 교회수첩도 만들어야 하는데 이렇게 누워있으려니까 참 불안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마음이 들었다. 교회는 누구 것인가? 하나님의 것이다. 누가 교회를 지키는가? 내가 지키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이다. 이제까지 내가 지킨다고 지켜서 그게 지켜진 적이 있는가? 없었다. 교회는 하나님이 지키신다.
▶한신교회 이중표목사님이 돌아가시기전에 이런 강의를 하신적이 있다. 목사들이 자빠져 자야 교회가 부흥된다.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마음이 있어야 교인을 대할때도 표정이 좋단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고 일주일을 누워서 쉬었다. 교회는 누가 지키는가? 독수리 오형제가 지키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지키신다.
//어젯밤에 박찬조집사님,현정옥집사님네 가정이 저희 집에 와서 제게 기도받고 오늘 홍콩으로 이사갔다. 원래 30일 넘어서 홍콩으로 이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이사짐센터가 휴무이기 때문에 오늘밖에 안된다며 갑자기 이사를 가게 되었다. 기도해주면서도 마음이 또 낙심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또 마음을 주셨다. 교회는 누가 지킨다구요?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오늘정오쯤에 제 아내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하면, 이번주일에 유치부 교사들이 명절 때문에 다 한국에 들어가고, 주일에 교사가 딱 두명밖에 없다는 것이다. 명절에 한국에 너무 많이 들어가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또 마음이 무거워지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는 누가 지킨다구요? 하나님이 지키신다. 그래서 마음을 다시 다잡았어요./
===> 옆사람인사: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낙심말고 기도합시다.
===> 믿음의 일꾼이 되려면, 첫째로, 말씀에 붙잡혀야 한다. 둘째,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붙들고 낙심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오늘 밤에 말씀에 붙들려 믿음으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좋은 길을 열어주실 줄을 믿고 기도하고, 응답이 있을 줄을 믿고 기도하자. ===>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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