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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4-주님을 판단하는 사람(마27:19-26)

최민환2011.05.10 07:00조회 수 911추천 수 5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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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판단하는 사람(마27:19-26)

▶중년의 두 남녀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어느날 남자 환자가 병원내 수영장에 뛰어들어 한참 지나도록 물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걸 본 여자 환자가 재빨리 물로 뛰어 들어 그 남자를 물밖으로 끌어내 구조했다. 병원장이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이제 그 여자 환자는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판단하고 퇴원 시키기로 했다. 그녀를 찾아 간 병원장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할 정도면 부인은 정상인으로 돌아 왔으니까, 퇴원 시키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은 당신이 구조한 그 남자 환자가 어제밤에 수영장 옆에서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그랬더니, 여자가 말하길"선생님, 그게 아닌데요. 자살한게 아니예요. 그 남자가 너무 물에 젖었길래 건조시킬려고 제가 매달아 놓았어요!!" 원장의 판단이 틀렸죠? 치료가 안된 것이다. 여러분, 전문가의 판단도 믿을수 없다.
===> 오늘 본문에는 인류역사상 가장 최악의 판단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본디오 빌라도/그의 이름은 지금도 매 주일마다 수억명의 입에 저주받은 이름으로 사도신경속에서 고백되고 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기 바란다.


■ 첫째, 성도는 자신의 유익을 따라 판단하지 말고, 진리를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인도에 재색을 겸비한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 여인은 왕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누렸다. 그러나 결혼한지 1년 만에 병들어 죽었다. 왕은 그 슬픔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왕비의 무덤 동쪽에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1년 후, 무덤 서쪽에 왕가를 상징하는 호랑이 동상을 세워 놓았다. 또 1년 후, 죽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호화로운 별장과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웅장한 성을 건립했다. 왕은 맞은편 동산에 올라가 왕비의 무덤을 포함한 전 공원을 내려다보면서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웅장한 성과 별장, 정교한 동상들과 공원의 중심에 위치한 무덤이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그래서 신하들을 불러 명령했다.“저 무덤을 당장 치워버려라.”웰스의 단편소설‘무덤’의 스토리이다.==> 자기의 만족과 유익을 따라 쉽게 마음을 바꾸는게 인간이다.

사람들중에는 빌라도에 대한 기독교의 평가가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빌라도는 나름대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애를 쓴 사람인데, 매주일 예배때마다“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받으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하면서 빌라도를 저주받은 사람으로 대우하는 것은 너무 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분명 성경에 보면 그는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름대로는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애쓴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23절에 보면“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고 말했고 또 요18:38에서“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고 하였다.“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라고 하면서 나름대로 예수님을 석방시키려고 여러번 노력했다. 그는 총 3번에 걸쳐 예수를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왜 그랬는가? 예수님에게 죄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임을 알면서도 십자가 처형을 결정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로마황제의 이름을 들먹이는 유대군중들의 협박을 이기지 못하였던 것이다. 빌라도는 거기에 굴복했다. 그러나 사실 그는 협박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욕심에 굴복한 것이다. 그는 총독자리가 보존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진실을 알면서도 자기자리의 유지를 위해 무죄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결정을 내려버렸다. 즉,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진리를 버린 것이다.

빌라도가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진리를 버린 결과는 무엇일까? 총독을 오래하고 출세했는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그로부터 불과 몇 년후 로마황제로부터 파면당한 뒤, 출세는커녕 칼리큘라황제때 자살하고 말았다.//진리를 못박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총독자리였건만, 결국은 출세도 못하고 목숨도 잃고 역사속에 저주받을자로 기억되고 있다.
===> 만약에 빌라도가 총독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백성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님을 풀어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유대인들은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을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로마황제에게 빌라도총독이 반역자를 살려주었다고 모함을 당해 아마 총독자리에서 파면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빌라도는 역사속에 영원한 의인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 유익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함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역사속에서도 저주받을 죄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 빌라도의 모습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진리대로 살아야 함을 알지만,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진리를 포기할 때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성경은 무엇을 말씀하는가? 진리가 아닌, 자기 유익을 위해 살면 망한다는 것이다.
===> 자기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살지 말고, 진리를 따라 판단하고 결정하며, 예수님을 위해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둘째, 성도는 남을 함부로 판단하기보다, 오직 하나님의 판단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판사가 한 사건을 놓고 다투고 있는 두 명의 변호사를 불렀다. 판사가 말했다. "고소인측 변호사는 내게 천만 원을 주었고, 피고소인측 변호사는 천오백만 원을 주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두 변호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자기들의 부정이 들통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사가 피고소인측 변호사에게 봉투를 건내며 말했다. "여기 오백만 원을 돌려드립니다. 이제부터 저는 공정하게, 소신껏 재판을 진행할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 이천만원씩이나 받아먹은 사람이 과연 남을 공정하게, 소신껏 판단할 자격이 있겠는가? 없죠.//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허물이 있다. 그런데 누가 누굴 판단하는가? /우리는 남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

본문 19절에 보면, 빌라도총독이 재판석에 앉았다고 나온다. 위치적으로 보면, 재판석에 빌라도가 앉고, 예수님은 피고석에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빌라도총독이 예수님을 재판하기 위하여 재판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이 누구신가? 성자 하나님이시다.//재미있는 것은 "재판석에 앉았다"의 앉았다는 단어는 자동사도 되지만, 타동사도 된다는 것이다. 즉 재판석에 앉혀졌다는 뜻으로도 이해할수 있다.(모세:건져진사람에서 건지는사람)==>그렇다면 진짜 진실은 무엇인가?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한 것이 아니라, 빌라도가 예수님께 의하여 재판을 받은 것이다.//지금 빌라도는 하나님앞에서 판단받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빌라도는 재판석에 앉아 자신이 모든 것을 결정할 권세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17절“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21절에도 동일한 말을 반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2절에 보면,“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빌라도는 예수를 판단할 권한이 자기에게 있는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착각이다.==> 사실은 빌라도가 재판받는 자리였다.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빌라도의 재판을 받은 예수님은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셨다. 그러나 빌라도 그는 몇 년이 안되어 자리에서 쫓겨나고 자살하였을 뿐아니라, 이천년동안 정죄를 당했다.==> 그러므로 실제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실은 빌라도였던 것이다.

우리 역시 빌라도 같은 착각을 할 때가 있다. 남편으로서, 아내와 자녀를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다./또 아내로서 남편과 자녀를 판단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또한 성도로서 다른 성도를 판단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착각이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삶의 자리는 남을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 판단받는 자리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판단하지 말고, 아내는 남편을 판단하지 말라. 성도는 성도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판단은 오직 하나님이 하신다. 남을 판단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그 헤아림으로 헤아림을 받게 된다. 항상 하나님의 판단을 의식하며 사시는 성도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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