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내키지 않아도 헌신하는 사람(왕상17:8-16)
남자들은 보통 한가지 일을 하고, 그후에 딴 일을 하지만, 여자들은 동시에 3-4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교회에서도 남자들은 한가지 일을 맡는 것도 힘들어하지만, 여자들은 보통 1인 4-5역까지 감당한다. 성경에 나오는 마르다가 아무리 일을 잘하는 여자였어도, 한국교회 여자들과는 비교할수 없다. 예수님도 1인 4역,5역을 맡고 있는 한국교회 여자성도들을 보시면 슈퍼우먼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수퍼 우먼'을 북한 말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방방 뜨는 에미나이' 사실, 한국교회는 이런 방방뜨는 에미나이들의 헌신에 의해 성장하고 부흥해 왔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과부는 도저히 헌신할수 없는 상황속에서 대단한 헌신을 했다. 엄청난 돈을 헌금한 것도 아니요, 대단한 일을 이룬 것도 아니다. 그저 딱 한번, 떡 한 개를 만들어 주의 종에게 대접해 준 것뿐이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죠. 그러나 과부가 처한 상황을 보면 떡 한 개가 그냥 떡한개가 아니게 된다. 과부는 굶어죽기 일보직전이었다. 이 상황에서의 떡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엘리야가 이 상황에서 과부에게 그 떡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니, 이것은 생명을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이 굶고 있는데, 자식에게 줄 것을 남에게 줄수 있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과부가 생명같은 떡을 자기와 아들이 먹지 않고 엘리야선지자에게 먼저 대접한 것이다.
===> 도저히 헌신할수 없는 상황, 아니, 헌신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헌신하였다. 엘리야의 염치없는 요구가 과부의 마음에 딱히 와 닿아서 떡을 준 것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부가 딱히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헌신할수 있었던 믿음의 근원은 무엇인가? 무엇이 과부로 하여금 그런 상황에서 헌신하게 했을까? 15절 말씀을 읽어보자.//“말대로 하였더니.”헌신할수 없는, 또는 도저히 헌신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헌신하게 하는 힘은 “말씀에 대한 믿음”에서 나왔다.
14절//만약 떡을 달라는 요구가 그저 엘리야의 말이었다면, 사람의 말이었다면, 과부는 안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이다. 과부에게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미국 초창기,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말굽을 만드는 가난한 대장장이에게 부자가 찾아와 말했다. "말고삐와 말굽을 월요일까지 만들어주시오". 대장장이는 월요일은 안되니 화요일에 해주겠다고 말했다. "아니 월요일까지 필요해서 그런데, 왜 일하지 않소?" 그러자 대장장이가 말했다.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에 일할 수 없습니다. 화요일까지 해드리겠습니다" 화가 난 부자는 옆의 대장간으로 가서 주문했다. 그러자 옆집 대장장이가 찾아와서 말했다. "고맙소. 당신 때문에 내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어느날 군인이 찾아와 대장장이에게 말했다. "당신이 주일에 일하지 않는다는 사람입니까? 내 친구를 거절하며 보낸 사람이 맞습니까?" 그러자 대장장이는 "그렇습니다. 저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사람 때문에, 돈 때문에 신앙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군인이 말했다. "당신에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 이해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택했습니다. 당신을 찾아온 목적은 정부의 사업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일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나라를 위해서도 정직하게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당신이 정부의 일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장장이에게 일을 맡긴 사람은 다우닝 장군이었다.
===> 대장장이는 주일을 쉬라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지킴으로 복을 받게 되었다.
===>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살면 손해볼 것 같지만, 반드시 복을 받는다.
===> 사르밧과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그래서 14절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최후의 남은 음식을 자기와 자기아들이 먹지 않고 대신 엘리야에게 주었다.//당장은 손해보는 것같다. 굶어죽을 것같다. 그러나 손해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복을 받는 길이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복을 차 버리지 말라. 하나님께서 더 장구하고 큰 복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 헌신할수 없는 상황에서 헌신하게 하는 힘은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 믿음에서 나온다. 이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믿음은 감정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믿음은 상황을 초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믿음을 구하라. 하나님이 복주신다. ▶왜 하나님께서 하필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과부의 가정에 보내셨는가? 그것도 하필 멀리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것은 바로 과부의 믿음을 보시고 보내신 것이다.
===> 만약 사르밧과부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엘리야를 보내셨겠는가? 아니죠? 사르밧과부에게 이미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리로 보내신 것이다. 복주시려고 말이다. 믿음에 복주시려고, 가정을 책임져주시려고 엘리야를 보내셨던 것이다.
===> 그러므로 기억하세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멀리서라도 사람을 보내시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복주시고 싶어서, 멀리서라도 사람을 보내어 복주실만큼의 믿음을 가지자.
세가지 믿음을 가지라.
-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헌신하게 만드는 믿음
-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 믿음
- 멀리서도 사람을 보내어 복주실만한 믿음.
이런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어, 헌신할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헌신하는 귀한 믿음을 가지세요.
남자들은 보통 한가지 일을 하고, 그후에 딴 일을 하지만, 여자들은 동시에 3-4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교회에서도 남자들은 한가지 일을 맡는 것도 힘들어하지만, 여자들은 보통 1인 4-5역까지 감당한다. 성경에 나오는 마르다가 아무리 일을 잘하는 여자였어도, 한국교회 여자들과는 비교할수 없다. 예수님도 1인 4역,5역을 맡고 있는 한국교회 여자성도들을 보시면 슈퍼우먼이라고 하셨을 것이다. '수퍼 우먼'을 북한 말로 무엇이라고 하는가? '방방 뜨는 에미나이' 사실, 한국교회는 이런 방방뜨는 에미나이들의 헌신에 의해 성장하고 부흥해 왔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과부는 도저히 헌신할수 없는 상황속에서 대단한 헌신을 했다. 엄청난 돈을 헌금한 것도 아니요, 대단한 일을 이룬 것도 아니다. 그저 딱 한번, 떡 한 개를 만들어 주의 종에게 대접해 준 것뿐이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죠. 그러나 과부가 처한 상황을 보면 떡 한 개가 그냥 떡한개가 아니게 된다. 과부는 굶어죽기 일보직전이었다. 이 상황에서의 떡은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엘리야가 이 상황에서 과부에게 그 떡을 자기에게 달라고 하니, 이것은 생명을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이 굶고 있는데, 자식에게 줄 것을 남에게 줄수 있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과부가 생명같은 떡을 자기와 아들이 먹지 않고 엘리야선지자에게 먼저 대접한 것이다.
===> 도저히 헌신할수 없는 상황, 아니, 헌신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헌신하였다. 엘리야의 염치없는 요구가 과부의 마음에 딱히 와 닿아서 떡을 준 것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과부가 딱히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헌신할수 있었던 믿음의 근원은 무엇인가? 무엇이 과부로 하여금 그런 상황에서 헌신하게 했을까? 15절 말씀을 읽어보자.//“말대로 하였더니.”헌신할수 없는, 또는 도저히 헌신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헌신하게 하는 힘은 “말씀에 대한 믿음”에서 나왔다.
14절//만약 떡을 달라는 요구가 그저 엘리야의 말이었다면, 사람의 말이었다면, 과부는 안된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이다. 과부에게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미국 초창기, 말을 타고 다니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말굽을 만드는 가난한 대장장이에게 부자가 찾아와 말했다. "말고삐와 말굽을 월요일까지 만들어주시오". 대장장이는 월요일은 안되니 화요일에 해주겠다고 말했다. "아니 월요일까지 필요해서 그런데, 왜 일하지 않소?" 그러자 대장장이가 말했다. "내일은 주일이기 때문에 일할 수 없습니다. 화요일까지 해드리겠습니다" 화가 난 부자는 옆의 대장간으로 가서 주문했다. 그러자 옆집 대장장이가 찾아와서 말했다. "고맙소. 당신 때문에 내 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어느날 군인이 찾아와 대장장이에게 말했다. "당신이 주일에 일하지 않는다는 사람입니까? 내 친구를 거절하며 보낸 사람이 맞습니까?" 그러자 대장장이는 "그렇습니다. 저는 손님이 원하는 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사람 때문에, 돈 때문에 신앙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군인이 말했다. "당신에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 이해합니다. 그래서 당신을 택했습니다. 당신을 찾아온 목적은 정부의 사업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일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나라를 위해서도 정직하게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당신이 정부의 일을 맡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장장이에게 일을 맡긴 사람은 다우닝 장군이었다.
===> 대장장이는 주일을 쉬라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지킴으로 복을 받게 되었다.
===>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으며 살면 손해볼 것 같지만, 반드시 복을 받는다.
===> 사르밧과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 그래서 14절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최후의 남은 음식을 자기와 자기아들이 먹지 않고 대신 엘리야에게 주었다.//당장은 손해보는 것같다. 굶어죽을 것같다. 그러나 손해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복을 받는 길이다. 눈앞의 이익 때문에 복을 차 버리지 말라. 하나님께서 더 장구하고 큰 복을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 헌신할수 없는 상황에서 헌신하게 하는 힘은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 믿음에서 나온다. 이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믿음은 감정을 극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믿음은 상황을 초월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런 믿음을 구하라. 하나님이 복주신다. ▶왜 하나님께서 하필 이렇게 찢어지게 가난한 과부의 가정에 보내셨는가? 그것도 하필 멀리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것은 바로 과부의 믿음을 보시고 보내신 것이다.
===> 만약 사르밧과부에게 믿음이 없었다면, 엘리야를 보내셨겠는가? 아니죠? 사르밧과부에게 이미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리로 보내신 것이다. 복주시려고 말이다. 믿음에 복주시려고, 가정을 책임져주시려고 엘리야를 보내셨던 것이다.
===> 그러므로 기억하세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멀리서라도 사람을 보내시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복주시고 싶어서, 멀리서라도 사람을 보내어 복주실만큼의 믿음을 가지자.
세가지 믿음을 가지라.
-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헌신하게 만드는 믿음
-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는 믿음
- 멀리서도 사람을 보내어 복주실만한 믿음.
이런 믿음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어, 헌신할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헌신하는 귀한 믿음을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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