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출 12:29-42
제목:여호와의 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가 일하시는 밤을 기대해야 한다.
본문 29,30,31,42절에 보면 밤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온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낮에만 활동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여호와의 밤”(42절)은 어떤 밤인가? <주님이 친히 역사하시는 밤>을 뜻한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밤에도 활동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밤에는 하나님이 활동하지 못하고 악한 영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는 일도 밤중에 일어났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을 구원해내실 때도 밤이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실 때도 밤이었다. 바울이 빌립보감옥에 있을 때 감옥 문을 여신 것도 밤중이었다. 홍해를 가르시는 것도 밤중에 이루셨다. 우리 주님은 캄캄하게 어두운 밤중에도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성경에 보면, 크고 놀라운 구원은 오히려 한 밤중에 일으키신다. 그래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 여호와의 밤은 성도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밤이요, 응답이 있는 밤, 승리가 있는 밤이다. 여호와의 밤이 오기를 기도하고 기다리며 기대하라. 여러분의 인생에 여호와의 밤을 체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아무리 캄캄하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라도 그때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여호와의 밤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런데 여호와의 밤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출12:28) 이스라엘백성이 <유월절 규례>를 하나도 남김없이,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한 날, 그날 밤중에 여호와의 밤은 시작되었다. 캄캄하고 앞이 안보일 때라도, 말씀 붙들고 순종함으로 그때를 기다리는 성도되길 축원한다.
▶둘째, 세상의 노예로 살지 말고 차라리 광야의 삶을 선택하라.
애굽의 종노릇하던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인해 애굽에서 나왔다. 그들이 간 곳은 어디인가?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37절) <라암셋>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애굽의 화려한 도시였다. 반면에 <숙곳>은 ‘오두막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광야에 있기 때문에, 라암셋과는 대조되는 아주 초라한 곳이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려한 도시 <라암셋>을 떠나 초라한 <숙곳>으로 삶의 자리를 변경한 것이다. 2백만명에 가까운 이스라엘백성에게 있어서 <숙곳>은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할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생활을 하면서, 라암셋에서의 잘먹고 살았던 때를 그리워했다.(출16:3, 민11:5) 그러나 기억하라. 라암셋은 이스라엘이 <노예살이>를 했던 곳이었다. 그들이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를 잘 먹었다고 했던 때는 <노예살이>를 할 때였다. 예수 믿기 전에 잘 나갔던 분들이 있다.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 현재 <숙곳같이 초라한 곳>에 머무는 분들이 있다.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그때는 <세상의 노예로 살았던 때>였다. 지금은 비록 화려했던 과거에 비해, 삶의 자리는 광야 같을 지라도, 더 이상 세상의 노예는 아니다. 세상의 눈으로 우리를 보면 <바보>같을 것이다. 그러나 애굽을 떠나 불편한 광야로 가는 것은 <광야 너머에 약속의 땅이 있기 때문>이다. 라암셋에 비해, 숙곳은 초라한 곳이지만, 이곳은 목적지가 아니라, 거처 가는 경유지에 불과하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주시기로 약속한 것이 있다. 지금 불편하고 부족하다고, 세상의 노예가 되었던 때를 그리워하지 말라. 성도는 세상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불편한 광야의 삶을 선택하라. 비록 현재의 삶이 고난의 길, 불편한 길, 광야의 길일지라도,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살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의 삶을 책임져 주실 뿐만 아니라, 광야 너머 약속의 땅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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