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믿음의 중요성
본문: 마태복음 18 : 8 – 9
주님은 우리가 죄를 어느 정도로 미워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신다. 손과 발로 죄를 지었으면 그걸 잘라버리고, 또 눈으로 죄를 지었으면 빼어버리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본문은 <성도의 믿음>과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본문에 “너로 범죄케 하면”에서 범죄는 헬라어로 <스캔달리제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마5장 29-30절에 “네 손이 너를 실족케하면” 에서 “실족하다” 의 헬라어 “스칸달론” 과 같은 뜻이다.
<실족>의 뜻은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는 것>을 말하는데, 본래 원뜻은 “올가미, 함정”으로, <유혹으로 죄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 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을 <실족하였다>고 표현한다. 곧 <범죄와 실족>은 같은 뜻으로, <믿음에서 떠난 삶>을 의미한다. 그래서 본문을 <믿음의 측면>에서 해석해 보면 세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믿음의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에서 이탈하고, 또는 죄로 인해 걸려 넘어지는 실족을 하는 경우는 나를 화나게 하고, 나로 죄짓게 만드는 사람들의 책임보다는, 내 스스로에게 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신앙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바르게 살고자 몸부림친다면, 어떤 사단의 역사가 있더라도, 그것에 미혹되거나 또는 걸려 넘어지는 실족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 이후 태어난 인류는 누구 하나 예외 없이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연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고, 사단은 그런 연약한 부분을 집중 공략하여 믿는 성도들을 넘어뜨리려고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은 언제든 죄지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간파하고 있어야만 한다.
즉 믿음의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자기 안에 더 큰 적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의 적이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을 향한 과다한 자기 욕심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믿음의 적이 혈연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육신의 안일과 쾌락만을 좇는 것이 믿음의 적일 수도 있다. 주님께서 네 손과 발이 너로 하여금 범죄케 하면 그것을 잘라버리라고 하신 것은 믿음의 적이 바로 우리 자신 안에 있기 때문이고, 결국 자기가 자신의 믿음의 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희생 없이는 믿음의 길을 갈 수 없다.
주님께서 손과 발을 잘라내고, 눈을 빼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자기희생 없이는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전적 타락한 근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고 선언하셨다. 인간의 죄성은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는데 방해요인 정도가 아니라, 믿음의 대적이다. 솔직히 우리 속에서 나오는 생각들, 또는 우리가 평소 추구하는 것들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고, 오히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지 않는가?
그러므로 성도는 끊임없이 자기를 살펴야 한다. 진리의 거울 앞에 자기를 비추어 보는 작업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셋째, <자기와의 고통스런 싸움>을 계속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본성이 성령의 요구를 자주 무시하고 거스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충돌하고,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충돌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는 자신과의 싸움이 없어요?> 라고 말한다면 이는 둘 중 하나이다.
너무너무 성령 충만하여 늘 성령의 요구에 순종하는 사람이든지, 아니면 반대로 아예 신앙생활을 하지 않든지 말이다.
자신과의 싸움은 쉽고 간단한 싸움이 아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손과 발을 잘라내고 눈을 빼는 것과 같은 <희생과 아픔, 결단이 요구되는 싸움>이다. 믿음의 길은 희생 없이 갈 수 없는 길이다.
운동선수들을 생각해 보라. 운동선수들은 승리를 얻기 위해 고통을 감수한다.
성도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 하면서 신앙의 길을 갈 수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는 없다. 성경에 나온 인물 중에 누워서 떡 먹기 식으로 믿음에 승리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신앙의 인물들은 모두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을 했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싸움을 싸울 것을 요구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가? 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싸움을 하면서까지 믿음의 길로 가야 하는가? 그것은 <믿음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고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손과 발이 죄를 짓게 만들면 잘라버리라고 하신 것은,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믿음에서 떠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즉 <믿음의 가치>는 <내 몸의 가치보다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마16:26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고 물으신 바가 있다. 온 천하보다도 사람의 목숨이 더 귀하다는 말씀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천하를 얻었다 한들 목숨을 잃게 되면 천하가 열 개, 백 개라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의 지체가 자신으로 하여금 범죄케 한다면, 실족게 하면, 즉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면,> 차라리 그것을 잘라버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믿음이 생명보다 더 귀하다>는 뜻이다.
왜 그렇게 믿음이 중요한가? 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손과 발이라도 잘라야 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주님은 <영생과 지옥불>을 비교하여 말씀하셨다. 주님은 비록 손과 발이 없는 불구자로 영생에 이른다 하더라도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 보다 났다고 하셨고,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났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영생의 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으로서 믿음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 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왜 어려워도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영생이냐 지옥이냐가 믿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다른 것에 다 실패해도 믿음에는 실패하지 않는 성도가 되라.
그를 위해 늘 자기를 살피고, 자기 안의 죄성과 싸우며,
믿음의 길을 가기 위해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복된 믿음의 성도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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