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헛된 신앙
본문: 마태복음 15 : 1 – 9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는 것을 가지고, ‘ 이는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는 행동 ’ 이라고 시비를 걸어옵니다.
그런데 본문 1절에서는, 이런 일을 위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예수님이 계시는 갈릴리까지 찾아왔음을 말합니다.
그 거리만 대략 150킬로, 도보로 최소 일주일은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럼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런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며 주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그 열심이 헛된 수고라는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이 그렇게 수고하여 갈릴리까지 예수님을 찾아와 한다는 질문은
‘ 제자들이 왜 식사 때 손을 씻지 않느냐 ’ 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이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당장 시급한 일입니까? 그만큼 중요한 일입니까?
어떤 경우에도 속하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을 하겠다고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의 모습에서 열심히 아니라,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오늘 내가 수고하고 애쓰고 있는 일들이 정말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들인가?
오늘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급한 일인가? 를 돌아볼 때,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의 기도의 시간이 우리 믿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 오늘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무엇이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은 또 무엇인지 주님의 지혜로 분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낭비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또 하나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찾아온 바리새인들에게 ‘ 고르반 ’ 이라는 전통을 가지고 역으로 질문합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이며 하나님께 드려진 것은 사람이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르반의 전통이, 하나님께 드린다는 이유가 핑계가 되어 어머니와 아버지께 해야 할 섬김을 하지 않는 이유로 사용되는 일들이 많았기에, 이를 예로 들어 이것이 옳으냐 물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고 그 뒤에 다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본문 9절에서,
“ 헛되이 경배 하는도다. ” 라고 말씀합니다.
헛된 신앙생활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헛되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보람도 의미도 없는 것을 헛되다 말합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닌 일에 힘을 쏟고 나면, 이러한 헛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중요한 일이 아닌 덜 중요한 일에,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인 것에 힘을 쓰면, 이 허무함, 헛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그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허무하게 다가온다면,
그것처럼 허탈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누가 다시 그 일을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믿음 생활이 헛되지 않고자 한다면,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고, 그 일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원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늘 기억할 때, 그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제자들의 손 씻지 않는 행동은 보면서도 그들의 허기짐과 궁핍함을 볼 수 있는 눈은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 바로 앞 장에 나오는 사건은 무엇입니까?
오병이어 기적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해 주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시다 보니 저녁이 되었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곳은 빈 들이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도록 하자고 건의를 합니다.
그때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이들을 바라보는 주님의 시선을 마태복음 14장 14절에서는,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주님 앞에 나온 무리를 불쌍한 눈으로 보셨습니다.
주님께 무언가를 얻기 바라는 그들의 상한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무리에게 말씀으로 먹이시고 병을 치료해 주셨으며, 먹을 것으로 실제적인 필요를 채워 주셨습니다.
주님의 눈에는 무리의 아픔이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 함께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는 눈이 주님께는 있었던 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눈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를 끄집어내는 일에 온 마음을 쏟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한탄스러운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는 역할이 자신들에게 주어졌음에도 그보다는 종교가 힘이 되어, 그들을 평가하고 점수 매기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변화가 이들 속에 없습니다.
헛된 신앙생활이란, 쓸데없는 것을 가지고 진리처럼 다루는 것입니다.
이것은 2,000년 전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잘못이면서 동시에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범하기 쉬운 잘못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시는 이 말씀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서도 헛된 열심, 헛된 수고가 반복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의 신앙에서 걷어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실하고 순전한 믿음으로 온전히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고 헌신할 수 있는 우리들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도 온전한 일을 위해 수고하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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