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9:12 -16
제목: 잡아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
오늘은 본문 말씀에서
롯이 자신의 사위들에게 소식을 전할 때, 사위들이 보이는 반응과
천사가 롯과 가족들을 이끌 때, 롯이 보인 반응에 중점을 두고 살펴보고자 합니다.
소돔이 멸망할 것에 대하여 전해들은 롯은 급히 나가서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이 소식을 전합니다.
특히 본문에서, ‘ 나가서 ’ 라는 의미로 쓰인 히브리어는,
군인이 전쟁터로 나가는 경우에 사용되는 말로
롯이 어떤 마음으로 사위들을 찾아갔는지를 알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런 롯의 말을 사위들은 ‘ 농담으로 여겼다 ’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인인 롯의 문제입니까? 사위들의 문제입니까?
먼저 롯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아무리 강한 어조로 이야기해도, 존중받지 못하는 권위를 잃은 어른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위들은 장인임에도 그의 말에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이는 앞서 롯의 말에 소돔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반응과 같습니다.
권위를 잃어버린 말에는 어떠한 힘도 없음을 보게 됩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교회의 모습과도 동일합니다.
교회가 영적인 권위를 잃어버리면,
세상은 교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교회와 성도들이 깨어 있어서
시대를 선도하는 삶을 산다면, 그들의 말에 세상이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한 영향력 있는 교회가 존재할 때,
그 권위를 가진 교회가 메시지를 선포할 때,
그 말에 힘과 능력이 나타날 때,
그런 교회로 인해 그 시대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다 보면, 아무리 옳은 소리를 해도 세상이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노아 시대가 그러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고 외쳐도,
듣고 깨닫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 즐거움에 빠져버린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시대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셨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없던 시대는
늘 그 댓가를 치러야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타락이 한계를 넘어버리면, 그 때에는 그 누가 와서 외쳐도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목말라하지 않는 시대가 가장 비참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소돔의 모습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본문에서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습니다.
천사들의 행동에 반응하는 롯의 모습입니다.
롯이 천사들의 인도함을 받을 때,
16절에서 ‘ 롯이 지체하였다 ’ 고 기록합니다.
사위들에게 말은 그렇게 했는데, 롯 자신도 이 소돔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운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은혜는 무엇입니까?
16절에서,
“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었다 ”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그곳에서 끄집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와 같은 순간에 지체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삶에 대한 미련이 있어서입니다.
포기되지 못한 꿈이 있어서입니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여전히 미련으로 남아서입니다.
포기 되지 못한 마음들이, 그로 지체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 순간 내 마음에 주저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 내가 누리고 싶었던 삶들,
내가 포기하고 싶지 않은 세상 즐거움들이
나로 주저하게 하는 것입니다.
롯은 그 주저함으로 인해 정작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여전히 주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은 그 때, 그런 롯을 천사가 손을 잡아 이끌었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 롯의 마음에는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뭐라도 하나 더 챙겨 나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 자신의 손을 잡아 이끄는 천사가 고맙기보다 원망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잡아 이끌 때가 있습니다.
급하게 몰아가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는 그것이 은혜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저 원망이 나오고 짜증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라면, 언젠가 알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고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날 때,
그때서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19장 16절은 뭐라 말합니까?
“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라고 ”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늘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에 늘 두렵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순간에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실 때,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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