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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4-5-1 큐티말씀 - 은혜 안에 살려면(창 9:18-29)

사무간사22024.05.01 16:52조회 수 21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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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창9:18-29

제목:은혜 안에 살려면

 

▶첫째,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은혜이다.

 

본문에서 제일 당황스럽고 궁금한 점은 <함이 저주를 받게 된 원인제공자가 노아>라는 점이다. 노아가 술에 취해 옷을 벗고 잠든 것이 원인인데, 성경은 노아의 실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아버지의 하체를 본 둘째 아들 함의 행동은 두 형제에게 그 사실을 알린 것밖에 없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아버지가 아들을 저주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들이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시각으로 이해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본문의 내용은 단순히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복받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식의 내용을 넘어서 복음의 진리를 담고 있는 부분이다. 노아는 둘째 아들 함의 행동을 <불효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세계에서 용납될 수 없는 행동>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은혜의 세계에서는 함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저주받을 수밖에 없다. 왜인가?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형들에게 알린 것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아버지의 벌거벗은 하체는 노아 자신에게는 수치요, 부끄러움이다. 따라서 함의 행동은 노아의 수치를 드러낸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누군가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드러내고 알리는 것과 같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보존되는 세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아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가 초점이다. 노아는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덮어주신 것이다. 노아와 가족들에게 왜 실수가 없겠는가? 왜 허물이 없었겠는가?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의 수치와 부끄러움을 보지 않으시고, 덮어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이다. 노아는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방주에서 나온 후에 정결한 짐승을 제물로 하여 제사를 드린 것이다. 은혜의 세계는 허물을 덮어주는 세계이다. 그런 점에서 함이 아버지의 수치를 가리지 않고 알린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저주의 대상이 된 것이다. 반면에, 축복받은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해 뒷걸음으로 들어가 옷으로 하체를 가렸다. 이것은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일치되는 행동이기에 축복을 받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의미는 우리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가려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의 세계는 <인간의 수치를 가려주는 세계>이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신 은혜 아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수치스러운 자는 없다. 모두 깨끗하고 거룩한 존재이다. 그런데 만약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서로의 행위만 바라본다면, 함처럼 상대의 수치를 드러내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음을 멸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은 저주로 끝나는 것이다. 셈과 야벳처럼 허물을 덮어주는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 다 되시기 바란다.

 

▶둘째,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이 은혜이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27절) 노아는 야벳이 창대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축복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10장에 등장하는 야벳의 족보를 보면, 셈과 함에 비해서 너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창대하게 하신다는 축복이 무색할 정도로 약한 가문으로 등장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야벳의 축복의 핵심은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에 있다. 다시 말해서 <셈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 야벳이 창대해지는 참된 의미인 것이다. 셈의 족보에 누가 등장하는가? 아브라함이 등장한다. 아브라함은 알다시피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이다. 따라서 셈은 하나님의 언약에 속한 족보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언약에 속했다>는 것은 <생명에 속했다>는 뜻이다. 눅3장에 의하면, 예수님으로 시작하는 족보가 나오는데, 예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까지 올라간다. 그 족보에 셈이 속했다. 함은 저주받았기에 당연히 없다. 그러면 야벳은 왜 족보에 없는가? 셈의 장막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즉 야벳은 셈 안에 있는 것이다. 신약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바로 아벳이 셈의 장막 안에 거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따라서 성도의 창대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속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것을 누리는 복에 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 안에 거하는 창대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는가? 야벳이 형인 셈과 마음을 같이하여 행동한 것같이, 우리도 주님과 마음을 같이하여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즉, 주님의 뜻을 따라가는 것이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요, 은혜 안에 머무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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