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창 8:1-19
제목 : 기다림에서 기다림으로
믿음의 사람에게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왔을 때 후외함과 아쉬움 없이 그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런데 성경에는 기다림의 시간을 잘 보낸 인물이 있는데 노아이다. 노아의 방주 안 생활은 정말 쉽지 않았을 것이다.
1절) 그런 노아와 모든 짐승들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시고 기억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물을 줄어들게 하셨다. 노아도 비가 그치고 물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이제 조그만 더 있으면 이 방주 생활도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방주에 들어온 지 6개월만에 방주가 어딘가(아라랏산)에 닿는다.(4절) 그러나 아직이다. 더 기다려야 한다. 두 달이 좀 넘은 후에 이제 다른 산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이다. 또 더 기다려야 한다.
40일 후에 노아는 까마귀를 내보낸다(6~7절). 그 후 노아는 비둘기를 내보낸다. 하지만 비둘기는 아직 물이 빠지지 않아 썩고 있는 것만 있는 세상에 머물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온다. 이제 노아의 기다림도 점점 지쳐가고 있다. 그래서 다시 칠 일을 기다렸다가 비둘기를 내보낸다. (10절) 여기서 ‘기다려’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훌의 뜻은 ‘비틀다’는 의미가 있다. 즉 노아는 몸을 비틀 정도로 빨리 방주에 나가고 싶어하고, 그 시간이 참 고통의 시간이다. 기다림의 한계가 찾아 온 것이다.
성도는 기다림의 한계에 다다랐을 이 때를 잘 보내야 한다. 믿음의 사람은 이때를 잘 보내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기다림의 시간에 후회와 아쉬움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요?
11절) 내보낸 비둘기가 저녁때에 돌아왔다. 성경에서는 저녁은 은유적으로 희망과 소망이 사라진 상태를 말합니다. 즉 노아가 좋은 소식을 기다리다가 지쳐 소망이 사라지고 있는 암울한 상태에 있을 때 비둘기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비둘기가 잎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물고 있었다. 그것을 본 노아가 물이 완전히 줄어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소망을 보았습니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에 지쳐있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보내주시기를 원한다. 소망 가운데 기다릴 수 있도록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성령의 비둘기로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한다.
노아는 칠 일를 기다렸다 다시 비둘기를 내놓는다.(12절) 여기서 ‘기다려’는 10절의 ‘기다려’와는 다른 히브리어 ‘야할’로 그 뜻은 ‘바라다, 앙망하다’이다. 즉 노아는 이제 기쁨과 소망 가운데 앞날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는 누구나 찾아오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에 잠시 절망 할 수는 있지만, 아주 절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준비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또 무엇보다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능력이 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
또 한 가지 인내와 기다림의 사람 노아는 기다림의 끝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신뢰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방주에서 나오라고 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14~16절) 성도는 오랜 기다림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신뢰해야 한다. 그래서 오랜 기다림 속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기다림의 끝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더욱 충만하게 누리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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