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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4-3-26 고난주간특새 - 예수를 파는 자(막14:43-52)

사무간사22024.03.27 21:14조회 수 21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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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막14:43-52

제목:예수를 파는 자

 

▶첫째, 예수님은 힘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대제사장이 보낸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할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벤다(47절) 칼을 휘두른 자는 <베드로>요, 귀가 잘린 대제사장의 종은 <말고>이다.(요18:10)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칼을 뺀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 같은 행동을 칭찬하지 않으시고 책망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26:52) 예수님은 왜 베드로를 책망하시며, 칼을 집어넣으라고 하시는가? ①칼은 세상이 추구하는 힘을 의미한다. 세상의 방식은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전쟁은 사실 돈이라는 칼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나라만 그런가? 사람들은 <돈>이라는 칼, <지식과 학벌>이라는 칼, <권력>이라는 칼, 심지어는 <외모>조차도 칼로 삼는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칼을 집어넣으라고 하셨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칼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칼이 아닌, 십자가로 세워지는 나라이다. 예수님이 힘이 없어서 잡히신 것인가? 아니다.(마26:53)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힘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이었다. 그러므로 힘센 성도가 훌륭한 성도가 아니라, 십자가를 붙들고 죽어지는 성도가 훌륭한 성도이다. ②칼은 혈기와 감정을 의미한다. 사람은 문자 한통에도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사람은 혈기와 감정 따라 살면 안된다. 왜 그래야 하는가? 성도의 싸움은 육적 싸움이 아니라, 영적싸움이기 때문이다.(엡6:12) 성도의 무기는 칼이 아닌, 십자가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믿음>이다. 십자가 지는 삶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 우리에게 없는 힘을 주시려고 오셨는가? 아니다. 예수님은 의가 없는 세상에 “의”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의이다. 힘이 없음을 애통해하지 말고, <십자가 지는 믿음>이 없음을 애통해하라. 성도의 힘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칼을 뽑지 않는데 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셨다.

 

예수님이 힘이 있음에도 힘을 쓰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마26:53-54) 반대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예수님을 보호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지키신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함께 하시며 지키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항상 이렇게 모든 대적을 물리쳐주시는 것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는 세상의 힘에 잡히게도 하시고, 당하게도 하신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붙잡히실 때에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도 침묵하셨다. 하나님은 요셉이 애굽으로 끌려갈 때도 침묵하셨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도 침묵하셨고, 세례요한이 목잘려 죽을 때도 침묵하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침묵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힘이 없어서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침묵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침묵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은 아무 힘도 없는 무능한 자처럼 붙잡히셨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죽음의 위협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 간절히 소망하기는 주님의 뜻이 무엇보다 중요한 성도되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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