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렘25:1-14
제목:회복에 필요한 것
▶첫째, 말씀 앞에서 내 고집을 꺾는 순종이 필요하다.
본문에는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이 3번 나오고, “듣지 않았다”는 말이 2번 나온다. 유다백성의 특징적인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23년간 꾸준히(3절), 끊임없이(4절) 말씀하셨지만, 유다백성들은 순종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았다. 왜 그런 것인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서 23년간 지속적으로 그들의 죄를 책망하신 이유는, <그들이 가는 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길로 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가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자의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준 그 땅에 살리라”(5절) 하나님은 유다가 악한 길과 악행을 버리고 돌아오면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신 약속의 땅에서 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러나 유다는 그 말씀을 거절하고 자기들의 길, 즉 악한 길과 악행을 고집한다. 왜인가?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나안땅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땅이었다. 물이 많지 않은 곳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비를 내려주시는 땅이었고,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땅이었다. 가나안은 영원한 천국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렇게 사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방나라들처럼 부요를 누리고 강해지는 것, 번성하게 되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왕되심을 거절하고, 6절 말씀처럼, 풍요와 번성을 약속하는 다른 신인 바알과 아세라를 따라다니며 섬기고 경배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지 않았던 유다백성의 결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긍휼에는 정해진 때가 있다. 회개도 정해진 기한이 있다. 돌이키지 않으면 징계와 심판이 기다린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즉, 문제는 <우리의 고집>이다. 자기의 생각을 고집하고, 자기의 길을 고집하는 것이 말씀 순종에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은총을 입기 위해서는 말씀 앞에서 고집을 꺾는 순종이 필요하다.
▶둘째, 하나님의 돌보아주심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겠다”(11-12절)고 말씀하신다. <칠십 년>이라는 말이 반복되는데, 칠십년 동안의 포로생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대하36:21에 보면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고 말씀한다. 유다 백성의 칠십 년 포로생활을 <유다 땅이 안식년을 누린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땅의 안식에 대한 규례는 레25:3-5에 기록되어 있다. 육년 동안 농사를 지었으면 칠년 째에는 농사하지 말고 땅을 쉬게 하라는 것이 <땅에 대한 안식년 규례>이다. 땅에 대한 안식년 규례의 취지와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돌보시는 은혜로 살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에 있다. 땅이 안식하는 동안은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생계 자체가 곤란해 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생계 문제에 곤란함이 없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년 규례는 하나님이 돌보시고 책임지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유다백성은 이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돌보아 주시는 인생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책임지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되심, 이스라엘의 주인되심을 깨닫게 하시고자, 그 땅을 황폐하게 하여 70년 안식을 취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칠십년의 포로생활은 <하나님이 인생의 주인이심을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단순히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한 징계와 형벌의 기간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누구시며, 성도는 누구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한 <은혜의 기간>이었다. 혹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책임지는 인생을 살고 있음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5:7) “너희”는 구원받은 백성된 저와 여러분을 의미한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돌보심을 받는 존재들이다. 물론 세상은 여러분을 흔들 수 있다. 물질문제로, 건강문제로, 자녀문제로, 일터문제 등으로 세상이 우리를 흔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결국이 무엇인가? 우리의 결국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책임지고 돌보시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돌보아주심을 믿는 믿음을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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