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요6:32-35
제목: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소개하신다. 예수님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되는가?
▶첫째, 예수님으로 인해 참된 생명을 얻게 된다.
35절에 <나는 생명의 떡>이란 말씀은 <생명을 주는 떡>이란 뜻이다. 즉,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생명>이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은 육적 생명이 아닌, <영적 생명>을 의미한다. 영적 생명을 가진 사람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 왜 우리는 고난이 있어도 망하지 않고, 죽지 않는가? 주님이 주시는 생명의 능력을 소유했기 때문이다./요6:57을 공동번역성경으로 보면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나의 힘”은 주님이 주시는 영적생명의 힘을 뜻한다. 여러분, 신앙은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예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먹어야 할 이유는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기 위함>이다. 주님은 생명의 떡이다. 누구든지 주님을 먹는 자는 주님의 힘으로 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육신의 떡으로만 살면 안 되고, 생명의 떡으로 살아야 한다. 주님을 먹어야 주님의 힘으로 세상을 이길 힘을 얻는다. 그러나 주님을 먹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혼자의 힘으로 가정을 잘 이끌수가 있는가? 우리의 힘으로 사업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가? 없다. 성도는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힘입고 살 수 있는가? 주님의 힘을 얻는 1차적 방법은 “말씀”을 먹는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할 때 이루어지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먹는 자는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게 된다.
▶둘째, 예수님으로 인해 참된 만족을 얻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주리지도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는 것은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세상의 음식은 오늘 먹었다고 내일 안먹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배터지게 먹어도, 내일 배 꺼지면 또 먹어야 한다. 만족함이 없다. 그런데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주리지도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즉 <만족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예수 믿었더니, 정말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게 되었는가? 이 말씀은 육신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말씀은 곧 주님께 나아오는 자, 즉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이 세상의 것이 주어지던, 주어지지 않든 간에 상관없이 믿음만으로 이미 배부르고 전혀 목마르지 않은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렇게 수시로 세상에 대해 목마르고 늘 배고픔을 느끼게 되는가? 답은 <잘못 믿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동기와 목적이 “육신의 편안함”인 사람은 만족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믿음의 동기가 육신의 편안함인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자기 죄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죄의 종노릇하는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없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육신적 편안함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 가운데 사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하고 더러운지를 아는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세상의 편안함이 아닌, 생명의 주님께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죽음의 자리에 서 본 사람만이 생명의 가치를 안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한 사람, 자신의 비참함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참된 양식인 예수님을 보고도 다른 떡을 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므로 참된 만족을 누리려면 초점을 주님께 두어야 한다. 모든 부와 귀가 다 주님께로부터 오고, 생사화복이 다 주님께로부터 옴을 아는 자는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다. 육신이나, 세상 것에 초점을 두지 말고, 오직 주님께 초점을 두는 성도가 되라. 그럴 때에 참된 만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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