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렘22:1-9
제목: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가 되려면
▶첫째, 교회는 은혜를 붙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3절)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그대로 준행하면 영광과 권세를 회복시켜주시겠다(4절)고 하시지만, 만약 이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으면 유다가 황폐하게 된다(5절)고 말씀하셨다. 결국 유다가 패망하게 된 원인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8,9절의 내용을 보면 장차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되었을 때 그 원인은 <유댜백성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까닭>이라는 것이다. 유다가 망한 것은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3절)는 말씀을 준행하지 않아서 망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우상을 섬겨서 망한 것(9절)인가? 그러나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말씀이다. 이방인, 고아, 과부를 학대하고 압제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섬긴 것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레18:2-5에 보면,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전에, <약속의 땅에서는 애굽땅의 풍속이나 가나안땅의 풍속과 규례를 행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만약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말씀을 지키면 그 땅에서 잘 살겠지만, 애굽이나 가나안 족속의 풍속과 규례를 따르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 이스라엘을 토하여 내친다고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풍속과 규례는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①“나만 좋으면 된다”는 것이다. 자기를 위하여 근친상간을 하고, 동성애를 행하는 것이 이방인의 풍속이었다. 그리고 ②“소유가 힘이라는 것”이다. 돈이 많은 자가 강자가 되어 약자에게 힘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죄성을 따라가는 이방인의 풍속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애굽의 풍속과 가나안족속의 풍속은 약속의 땅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땅>이었다. 약속의 땅은 “나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만 좋으면 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가야 하는 것>이 약속의 땅에 어울리는 삶이다. 그리고 약속의 땅은 <소유가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힘이 되시는 땅>이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여야 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산물임을 잊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 주변의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거나 압제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야 했다. 그런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언약을 어긴 것>이다. 그리고 다른 신을 섬기는 것도 다르지 않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이유는 <소유를 더 확대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다. 자신의 소유를 더 확대시켜줄 신(神)을 찾은 것이다. 이것이 이방의 풍속이었는데, 유다 역시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서 다른 신을 섬기게 된 것이다. 약속의 땅에서는 소유가 힘이 될 수 없다. 여러분, 소유가 아닌,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성도가 되라.
▶둘째, 교회는 공의를 행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3절에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정의와 공의”란, <올바르고 의로운 일>을 의미한다.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공동체이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망했다. 그런데 여러분, 정의와 공의를 행하라는 말씀은 구약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인가? 오늘날 하나님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요구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성도라면 마땅히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공동체 역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교회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공동체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본문 3절에서는 3가지를 말씀하는데, ①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는 것이고, ②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않는 것이며, ③무죄한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도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함부로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된다. 성도는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고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도는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도와주며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돈 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돕지 않고, 오히려 함부로 판단하고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심판받을 행위이다.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거나 괴롭게 하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돕는 손길을 베풀어 위로와 나눔을 베푸시기 바란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올바르고 의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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