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렘 15:10-21
제목: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오늘 제목만 보면 아~ 끊질기게 저항하며 대적하던 남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이제는 회개했구나! 그래서 하나님이 용서해 주셨구나 이렇게 생각되시겠지만 아쉽게도 오늘 본문은 남유다 백성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예레미야 선지자 개인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얼마나 욕을 먹었을까요? 얼마나 많은 비난과 저주, 핍박을 당했을까요? 다들 평안하다. 문제없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라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하는 시대에 하나님은 너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너희를 버리셨다. 이렇게 말했으니 예레미야는 민족의 반역자 이단아. 거짓 선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탄식하고 절규할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언자로 활동했던 그에게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를 핍박하며 죽이려고 까지했습니다. 그런 상황 때문에 예레미야는 지치고 좌절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하나님께 털어놓았습니다. 예레미야의 탄식을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10절입니다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예레미야는 온 세상의 사람들이 다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싸움을 걸어오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자신의 동족들이 자신의 예언을 듣고 모두 자신과 싸우려고 달려드는 것처럼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외로움이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더구나 동족과 친척, 친구들이 자신을 저주하는 상황을 그가 경험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하는 사역 때문에 그렇게 시비꾼이나 쌈꾼으로 낙인찍히고, 돈을 떼어먹은 채무자나 빚을 독촉하는 악한 채권자처럼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원망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레미야의 탄식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분명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지만 예레미야의 기도는 들어 주셨습니다. 아무도 기도하지 않았지만 분명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도 기도했다면 그 기도도 들어 주셨을 것입니다. 마치 야! 너 그렇게 할꺼면 학교 다니지마 뭐 요런 거겠죠?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지금 사람들로부터 저주를 당하고 있던 예레미야를 강하게 하시고 복을 누리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원수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가 선포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성취될 때, 원수들은 그 환난에서 자신들을 건져달라고 예레미야에게 도움을 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멘이시죠?
그런데도 예레미야는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우리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다시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15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대적들 앞에서 불안하고 두려웠던 예레미야는 주님께 자신을 잊지 말고 돌보아 주시기를 구했습니다.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에게 원수 갚아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지자는 ‘주님께서 알아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렇게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자신을 알아달라’고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자신이 만군의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선지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소유인 자신을 잊지 마시고 자신의 사역에 대해 책임져주시길 구한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면서도 예레미야는 자신 안에 있던 불안과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하나님께 탄식하며 절규했습니다. 18절입니다.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보시면 ‘어찌하여’라는 표현을 반복하면서 하나님께 탄식했습니다. 자신의 고통은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상처는 낫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탄식하며 절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향해서 ‘속이시는 분’이라고 불경한 표현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예레미야는 대적의 비난과 핍박과 저주가 그러인한 상처와 고통을 무겁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런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응답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위로와 희망이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이런 예레미야를 위로하셨습니다. 그를 ‘견고한 놋 성벽’으로 만드실 것이라구요. 선지자의 대적들이 예레미야를 이기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구요. 그러면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20절입니다.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아멘
그리고 마지막 21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대적들 앞에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예레미야를 그렇게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악한 대적들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손을 잡아주시겠다구요.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도와주시고 그를 구해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의 사명을 다 감당할 때까지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노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도님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하다가 위축되고 탄식하는 예레미야를 향해 응답하시면서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를 강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신다고, 그를 강하게 하셔서 대적들과 맞서게 하시겠다고, 대적이 그를 이기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대적이 예레미야를 이기지 못하게 하겠다고, 반드시 예레미야와 함께 있어서 그를 도와주고 구원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으로 위축된 예레미야를 격려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다가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혹시 이런 일이 없다면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하실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계시는 것 일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명으로 부르셨습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잘 찾아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들은 분명 이 영적으로 치열한 세상가운데 지치고 힘들어 탄식하게 될 때가 있을 겁니다. 그 때 우리가 예레미야처럼 기도하면, 주님은 우리의 탄식에 응답하시고 위로하시며 격려하여주십니다. 그 위로와 격려를 통해 주님은 우리의 사명을 다시 회복시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다시 회복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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