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렘9:1-16
제목:지혜로운 사람
▶첫째,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안이 열린 사람.
1절에 보면 선지자가 통곡을 한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여기서 “내 머리는 물이 된다”는 말은 내 머리가 우물이 된 것처럼, 끊임없이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10절을 보시면 “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여기서 울며 부르짖으며 슬퍼하는 나는 예레미야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어서 11절에 “내가 예루살렘을 무더기로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선지자도 울고, 하나님도 우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유다의 죄와 그로 인한 비극적인 결과를 알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과 선지자가 공유하는 슬픔의 원인은 남유다백성의 거짓에 있었다. 1-8절에 반복되는 말은 <거짓과 속임>이다. 거짓이 3번, 속임수가 4번 나온다. 유다백성들은 <입>이 문제였다. 그들은 겉으로는 말을 엄청 잘했다. 속이는 사람들은 말을 얼마나 잘하는가? 비방하는 사람들도 얼마나 말을 잘하는가? 그러나 그들의 속은 죄로 가득했다.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상대방을 해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8절) 그들은 속이고, 비방하고, 거짓말하는 것에 너무 바빠서, 하나님 알기를 싫어할 정도였다.(6절)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치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7절) 여기서 “녹이고 연단한다.”는 말씀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닌, 부정적 의미로서, “금속을 단련할 때 망치로 내려치듯, 유다백성을 내려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통한 심판의 말씀을 들은 유다백성들의 반응은 무엇인가? 심판의 말씀 앞에 울어야 하는데, 울 줄 모르는 것이 유다의 문제였다. 유다는 선지자가 왜 우는지, 하나님이 왜 슬퍼하시는지 모르는 것이다. 왜인가? 자기의 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 질 현실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벌하시지 않을 수 없고, 보복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심각하게 무너진 상태였다. 그들에게 영안이 열려 있었다면, 자신들의 현실을 깨닫고, 자신들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깨닫고 주님의 은혜를 구했을 것이다. 영안이 열려야 은혜도 열리게 된다. 그러나 유다백성은 자신의 현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영적인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영적인 눈이 감긴 사람은 자신의 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울 일도 없고, 슬퍼할 일도 없는 것이다. 누가 심판을 피하는 지혜로운 사람인가? 말을 번지르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하실 일을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둘째, 욕망을 따라가지 않고,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13-14절) 13절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죄”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죄이다. 사랑을 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않은 것도 죄이다. 용서하라고 하시는데 용서하지 않은 것도 죄이다. 그리고 14절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죄”이다. 우상숭배는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우상숭배는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 절대금지사항이다. 우상숭배는 교회가 아닌, 어디 다른 신을 찾아가 절을 하는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은 모두 우상숭배이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가? 이렇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우상숭배임을 알고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알면서도 돌아서지 않는 것이다. 유다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고 금하신 것은 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나님의 말씀에 정반대로 행하는 자는 지혜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다백성들은 왜 하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는 청개구리가 되었는가? 14절에 “바알들”이 무엇인가? 성공과 번영을 주겠다는 신이다. 즉 유다백성들은 진리되신 하나님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 욕망을 채워줄 <바알들>을 따라간 것이다. 진리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고, 마음의 완악함, 즉 고집을 부려서, 자기 욕망을 따라 살았다는 말이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여러분,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욕망 따라 살지 말고, 진리 따라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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