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렘8:4-12
제목:다시 일어나려면
본문 4절은 누구든지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영적으로 넘어진 유다백성이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일어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미이다. 4절에 나오는 <일어나다와 돌아오다>라는 단어는 둘 다 “회복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해야 다시 일어나는 영적회복을 경험할 수 있을까?
▶첫째, 회개가 있어야 한다.(5-6절)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5절) “거짓”은 우상숭배를 의미하고, “고집하다”는 “붙잡다. 매달리다”라는 뜻이고, “거절하다”는 “싫어하다”이다. 하나님께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유다백성들은 우상을 붙잡고 매달려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싫어했다. 하나님은 유다백성들이 자기들의 죄를 뉘우치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6절)라고 말하면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자가 없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간 말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처럼, 유다백성은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달리는 기차가 관성의 법칙에 의해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유다백성은 죄에 매여서 멈추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게 된 것이다. 여러분, 회개하지 않는 남유다의 결국은 비극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갔고, 나라는 망했다. 다시 일어나는 영적 회복을 경험하려면 가장 먼저 회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는데 있다. 아니, 알면서도 회개를 못한다. 왜냐하면 죄가 가진 관성의 법칙 때문이다. 그러나 죄가 가진 관성의 법칙을 끊는 비결이 있다. 바로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회개하면 된다. 십자가의 능력은 죄의 관성법칙을 끊어버리고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다. 내가 뭘 해서가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나의 죄를 가져가시고,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신다. 그것이 회복이다. 회복의 기본은 회개이다. 회개하면 회복된다. 성도는 무엇보다 회개를 잘해야 한다.
▶둘째, 말씀이 있어야 한다.(7-9절)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7절) 동물들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본능을 따라 떠나갔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걸 <회귀본능>이라고 한다. 미물에 불과한 철새조차도 하나님이 세우신 자연법칙에 순종하는데, 하나님께 택함 받은 유다백성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철새도 아는 것을 하나님 백성이 모르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여러분, 사람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참된 영적 회복을 맛보려면 회개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데까지 가야 한다.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8절) 하나님은 서기관의 붓을 “거짓의 붓”이라고 말씀한다. 무슨 소리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되게 가르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모두 왜곡되어 거짓으로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다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는 또 하나의 원인이었다. 말씀이 바르게 가르쳐지지 않으니까, 하나님께 돌아가야 하는 자신들의 죄의 실상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유다백성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들은 <서기관들이 가르치는 잘못된 가르침 아래>있었다. 서기관들이 말씀을 거짓되게 가르치는데도 잘못된 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은 지혜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지혜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교회의 성장과 부흥인가? 아니다. 교회에서 중요한 것은 말씀의 기능이 회복되는 것이다. 왜인가? 말씀의 기능은 우리의 죄를 드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거울로 자기 모습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약함과 악함을 보게 하는 것. 그래서 예수님 밖에는 답이 없음을 알게 하는 것. 이것이 말씀의 기능이다. 사람이 말씀을 멀리하게 되면, 한 가지 착각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컷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의 것을 힘으로 삼고 살아가면서도 자기는 아무 문제없다고 여긴다. 왜 그럴까? 교회를 다닌다는 정당성으로 자신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를 빠지지 않으니까, 나는 성경 읽으니까 내 신앙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9절)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누가 지혜로운 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대로 사는 자가 지혜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참된 회복이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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