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렘2:9-19
제목:하나님을 버린 죄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시고 난 후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라고 주신 말씀은 광야 시절의 이스라엘과 백성과의 관계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어제 본문인 2장 2절인데요. “가서 예루살렘의 귀에 외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그 광야에서 나를 따랐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 주시고 40년 동안 광야의 여정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광야시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성실했고, 사랑했으며, 하나님을 잘 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언제? 이럴 만한 소리죠? 우리가 성경으로 봤던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기억을 더듬어 보시길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이 가득했던 모습이었습니다. 작은 어려움만 있어도 아니? 애굽에서 잘 먹고 있었는데 왜? 광야로 이끌어 내서 죽게 하느냐?라고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만나로 먹이셔도 고기를 먹은지 오래되었다고 옷이나 신발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어도 물과 불 기둥으로 백성들은 인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늘 불평했던 백성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과거를 회상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그 때는 성실했고, 사랑했으며, 하나님을 잘 따랐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성도님들 지금 이스라엘이 얼마나 망가졌으면 그럴까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성도님들도 생각해 보셔야 할게 광야생활을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불평을 할지언정,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았던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죽이고, 모세를 통해서 새로운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셨던 때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향한 불평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과정으로 여기신 듯 합니다. 마치 신혼 부부가 결혼하여 함께 결혼생활을 할 때 서로에게 불편한 부분들에 대해서 갈등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것이죠. 그래서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지시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끄신 과정을 신혼의 기간에 비유하신 겁니다. 그 불평과 원망 조차도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을 따르는 모습으로 판단하신 겁니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짠하죠? 그런데 40년의 광야 시간이 지나가 가나안 땅에 들어서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아뢰는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헛된 우상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러한 모습을 주님께서 슬퍼하시면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 하고 가서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 한탄하며 말씀하시길 ‘내가 뭘 잘못했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아갈 때에 지키시고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자신의 백성 삼으신 이스라엘을 이끄시고 인도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자기를 떠나 좀 좋은 남자를 만났으면 덜 안타까울 텐데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는데 그 모습은 헛된 우상을 쫓아다니느라 허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 ‘헛된’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헤벨’로 ‘입김이나 숨결’,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합니다. 입김이 입 밖으로 나온 후에는 1초도 안되서 사라져버리는 입김처럼 아무 것도 아닌 허망한 것을 의지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더라는 겁니다. 결국은 자신도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계십니다.
3절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 그를 삼키는 자면 모두 벌을 받아 재앙이 그들에게 닥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르켜 ‘거룩하게 구별된 나의 수확 중 첫 열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아주 거룩하게 구별하였고, 하나님의 소유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확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듯이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들로부터 거룩하게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하나님의 소유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거룩하게 여기고 귀히 여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재앙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광야 생활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 아래서 살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까이에 계셨고, 돌보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하나님을 떠나 헛된 우상을 섬기기 시작한 겁입니다. 결국은 헛된 우상을 쫓아 허무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7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돌보셨고, 인도하셨는지는 모두다 잊고, 가나안 땅에서 풍족함을 쫓아 헛된 우상을 따라 살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농작물에 풍요로움을 준다고 여기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소유물 삼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가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되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9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도님들 이거 참 무서운 말인데요. 이제는 그 사랑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께서 법대로 처리하겠다고 선언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이 그렇게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제시하셨습니다. 그들이 다른 이방의 민족들보다 더 악한 백성들이라고 고발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깃딤 지금으로 치면 키프로스구요. 게달을 예로 드셨습니다. 키프로스는 서쪽 곧 지중해에 있는 민족이었고, 게달은 동쪽 곧 아라비아 반도에 있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세계에 있는 민족을 의미합니다. 그 나라들은 비록 신이라고 할 수 없는 미개한 대상을 섬기는 민족들이지만, 자신이 섬기는 신을 버리고 다른 신으로 바꾸는 일은 흔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는 것이 어떻게 이렇게 쉽냐고 책망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안타까워하시면서, 그들의 죄는 하늘이 놀랄만큼 큰 죄악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12절입니다.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하늘과 땅’을 그 언약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증인이 되는 하늘이 보고 놀랄 만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이방의 신을 섬기는데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고는 이스라엘의 근본적인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이게 오늘 본문의 핵심인데요. 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야 할 이스라엘이 두 가지 근본적인 악을 지질렀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 스스로 물이 고이지 않는 새는 웅덩이를 팠다고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꾸짖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신 의지하려고 했던 대상은 강대국들이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유대에는 애굽이나 앗시리아를 의지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의지했던 강대국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이스라엘이 괴로움을 주는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 대신 선택한 물 웅덩이가 터져서 물이 새는 웅덩이와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대신 다른 민족이나 우상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악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 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그렇게 선언하셨습니다. 19절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의 악과 하나님을 향한 배신은 결국 징계로 나타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악과 반역이 낳은 결과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악과 배반의 동기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악하고 고통스러운 지를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성도님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물을 담을 수 없는 웅덩이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잊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광야시절에 하나님을 의지했던 신앙을 잊고 가나안의 풍요에 마음을 빼앗긴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잊은 결과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눈에 보이는 우상과 힘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강대국을 의지했지만 결국 심판과 재앙을 당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의지하고 신뢰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생명의 생수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모든 성도님들 그 하나님 앞에 다시 눈을 돌리는 오늘 하루가 그리고 우리 인생이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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