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행27:27-44
제목: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삶
▶첫째,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27절)
27절에 보면 풍랑을 만난지 14일이 흘렀음을 알 수 있다. 풍랑 속에서 14일을 보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처음에는 살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가졌다 할지라도 14일 동안 계속되는 풍랑 속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풍랑을 만난지 사흘째 되던 날에 바울은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을 말하면서 안심하라고 격려했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하고 11일이 지난 상황이다. 아무도 죽지 않을테니 안심하라고 했는데, 11일이나 지났는데도 풍랑이 여전히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바울에 대해서 불신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바울과 함께 배에 타고 있었던 사람들의 반응이다. 본문을 보면 아무도 바울을 비난하거나 불신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4일째 되던 날 밤에 사공들이 몰래 도망치려고 할 때 바울이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저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자, 군인들이 바로 구명정의 밧줄을 끊어버려 구명정을 떼어버렸다. 이러한 군사들의 행동을 보면 바울의 말을 신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34절에 머리카락 하나 잃을 자가 없을테니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을 때, 36절에 사람들이 다 안심하고 받아먹었다고 나온다.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신뢰한 것이다. 아직 풍랑이 끝나지 않았다. 말이 성취가 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바울을 계속 신뢰한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다. 주님이 은혜를 베푸시면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는 자가 될 수 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이스라엘이 애굽사람들에게 은혜를 입었던 것처럼,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은혜를 입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둘째,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30-31절)
30절에 보면 사공들이 도망가려고 한다. 왜냐하면 풍랑에 이리저리 밀려가는 와중에도 물의 깊이를 재어보았는데, 점점 수심이 낮아지는 것이었다. 즉 육지가 가까워진 것이다. 그러면 암초에 부딪힐 위험이 생긴다. 배가 암초에 걸리면 무조건 부서진다. 분명히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 아무 손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공들은 말씀을 믿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믿었다. 지금 풍랑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와중에 육지에 가까워지면 암초에 걸려 배가 깨지고 모두 죽을 것이라는 경험과 상식에 매여서 거룻배(구명정)를 몰래 내려 자기들만 도망치려고 한 것이다. 사람이 말씀보다 경험을 앞세우면 이렇게 이기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사공들이 도망치려는 것을 알게 된다. 바울은 사공들이 없으면 배에 타고 있는 남은 사람들은 다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사공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했다. 바울의 지혜로운 대처로 인해 276명은 마지막까지 한 사람도 죽지 않고 살게 된다. 사공들의 지식과 경험은 틀렸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의 지혜는 성공했다. 모두를 살렸다. 사공의 지혜는 남을 죽이는 지혜이고, 바울의 지혜는 남을 살리는 지혜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남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살리는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는가? 주님이 주시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주님이 지혜 주시지 않으면 누군가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님이 주시는 지혜로 살아야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삶을 살 수 있다.
▶셋째, 주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34절)
사람들은 풍랑 뿐 아니라, 이제는 암초에 걸려 죽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염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어떻게 하는가? 열나흘이나 먹지 못하고 주렸으니, 이제 음식을 먹으라고, 너희 중에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다고, 떡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축사하고 먹으니까, 사람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먹었다는 것이다.(33-38절)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행동했을까? 풍랑으로 캄캄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 육지에 도착할지 알고 음식을 먹게 했을까? 그리고 남은 양식을 모두 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음날 아침에 육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주 타이밍이 딱 맞았다. 즉 음식을 권하고 남은 양식을 버리게 한 바울의 행동은 아주 시기적절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바울이 이렇게 확신있게 권면할 수 있었던 것은 바울 개인의 인간적 동정심보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에 27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따라 음식을 먹고, 남은 양식을 다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바울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 따라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성도는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면 안되고, 주님이 주시는 감동을 받아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남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탄마귀는 우리가 감동 따라 살지 않고, 충동 따라 살기를 원한다. 감정 따라, 충동 따라 사는 사람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사람이 된다. 우리가 우리 자녀들과 교우와 이웃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입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