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행3:1-10
제목: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날 때부터 못 걷게 된 이 사람은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서 구걸을 하며 살았다. 그런데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 매일 성전미문에 나와 앉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날마다 그를 메어다가 그곳에 두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족이었는지, 친구였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성전 안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미문 앞에서 구걸하게 했다는 점이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성전 안으로 데려가지 않고, 성전 밖 미문에 두었는가? ①율법에 의하면, 장애인은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애인인 그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②아마도 사람들은 그의 형편과 상황 때문에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성전에서의 예배가 아니라, 당장 먹고 살 돈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보여진다. 사람들은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의 인생에 필요한 것이 뭔지 몰랐을 뿐 아니라, 알아도 해결해 줄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 인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성전 밖의 삶이 아니라, <성전 안의 삶>이었다. 8-9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된 그 사람이 건강해진 다리로 제일 처음 간 곳이 어디인가? 집으로 달려가 가족들을 만났는가? 아니면, 그 동안 못 가봤던 식당을, 여행을 갔는가? 아니었다. 태어나서 생전 처음 걷게 된 그 사람은 즉시 사람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가 뛰며,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하며 성전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그의 문제를 해결하여 줌으로, 육신의 필요를 넘어 진정한 필요, 즉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으로 달라지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지 않고, 그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이 처음 요구한대로 돈을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는 무척 감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는 변함없이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 거지로서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은 바로 <우리의 이전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는 처지였고, 구걸하는 것조차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는 돈이 필요할 때면 스스로 나가지 못하고 누군가가 자신을 성전 미문에 데려다 주기를 애타게 기다릴 뿐이었다. 마음은 원이지만 그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참으로 연약하고 무능한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모습이 영적으로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우리는 <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만큼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6절 말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이 말씀은 날 때부터 걷지 못한 사람에게 “너의 문제는 오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은 의와 구원과 천국에 대해서 약하고 무능한 우리에게는 “연약하고 무능한 너를 일으켜 세울 분은 오직 너의 모든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고 선언하는 복음의 메시지이다.
여러분, 우리가 여름사역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배고픔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즐겁게 놀아주기 위해서인가? 또는 육신의 질병을 치료해주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우리가 여름사역을 하는 것은, 중국 분에게 뭘 배부르게 먹여주거나, 놀아주거나, 치료해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예수의 이름, 그 예수의 이름 때문에 구원을 얻고, 그 예수의 이름 때문에 복을 받은 우리가, 그 예수를 그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 마땅한 사명이기 때문에 사역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먼저 내안에 주님이 있어야 한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금과은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성도는 다른 것 다 없어도,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이다.(고후4:7)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나눠줄 수 없다.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것만을 줄 수 있다. 자기에게 없는 것을 마치 있는 것처럼 주려는 것은 사기치는 것이다. 내가 만나지도 못한 분을 다른 사람에게 믿으라고 할수 있는가? 내가 먼저 주님을 만나고, 내가 먼저 주님의 능력 안에 거하는 삶, 예수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다른 사람에게 능력 있게 예수의 이름을 증거할 수 있다. 베드로는 제9시, 오늘날로 하면, 오후3시에 성전으로 기도하러 갔다. 기도는 주님만을 바라보는 행위이다. 주님밖에 없다는 표시가 기도생활이다. 지속적인 기도생활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전도의 비결은 단순하다. 우리가 주님만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역사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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