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사기 7:9-14
제목: 여호와가 함께 함으로
말씀: 최광섭선생님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아침은 ‘여호와가 함께 함으로’라는 제목으로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경험이나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까요? 또 크고 강하면 과연 좋을까요? 우리는 크고 많고 강하고 아름다우면 좋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은 걱정과 염려, 두려움에 부정적인 감정은 없을까요?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쩌면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지는 낙차가 크기 때문에 그 두려움의 크기는 더해질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기도온을 어떻게 회복시키시는지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 큰 전쟁을 앞둔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전쟁에 참여한 3만 2천 명의 이스라엘 군대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운 사람은 떠나라. 그러자 2만 2천 명이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미디안의 군사 13만 5천 명과 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하나님은 왜 전쟁을 앞두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당연한 질문을 하셨을까? 2절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품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전쟁은 숫자나 경험으로 하는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전쟁을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것을 가르쳐 주려고 하십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7만 명이 모이는 대형 기독교 집회가 열렸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한 강단에 한 목회자를 세워서 선포합니다. 너희들 너무 많이 모였다. 내가 너희들을 잘 아는데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대한민국을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 오직 믿음으로 정직하게 사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떠나가라.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어렵게 지방에서 올라왔더니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하며 마음 상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또 선교사인 저에게도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니가 가지고 있는 게 너무 많다 너의 목회적인 경험, 너의 재능 너의 인맥 재정 가지고 있는 게 너무 많아 너는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타이중 사람들을 구원하였다 할까 하니라. 순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 말이 맞는 말씀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선교 후원금이 끊어지는 거 두렵지 않니? 너의 자녀들이 지금처럼 어려움 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니? 더 나이 들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노후를 준비해야 되지 않겠니? 라고 말씀하신다면 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용기 있게 주님 두렵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아요 라고 말할 수 있지요. 그 때 주님이 한 가지 더 테스트를 하십니다.
두 번째는 너희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이 시험도 아주 기본적인 시험입니다. 누구나 매일 하는 일, 바로 물 마시는 시험입니다. 수많은 시험 중에 왜 하필 물 마시는 시험이었을까요? 저는 군 생활을 공수부대라는 곳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낙하산을 타는 부대인데요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하나같이 앞꿈치와 무릎을 붙이고 있습니다. 낙하산을 타고 땅에 닿는 순간 앞꿈치와 무릎이 붙어 있으면 최소한 부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꿈치 무릎 앞꿈치 무릎 외치며 두 달 동안 훈련장을 뛰어다녀야 했습니다. 몸이 기억하도록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위기의 상황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의 습관을 알 수 있습니다. 1만 명 중에 9천700명은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습니다. 타는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무릎 꿇고 물을 먹으면 왜 안 됩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보신 것은 달랐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칠 년 동안 발 신에게 무릎 꿇고 우상 앞에 절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라 하나님은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어떤 좋지 못한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는 않으십니까? 좋지 못한 것을 먹고 마시고 보고 만지는 것은 아닙니까? 별 것 아니라고요? 작은 문제라고요?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우리 내면의 깊은 의도를 파악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압니다. 어쩌면 우리가 우리 내면의 내적 자아를 정면으로 정직하게 맞이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악하고 또 약한지를 아마 우리가 보리떡 한 덩어리 같은 그러한 존재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습관을 갖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 오늘 말씀 본문에 보면 보리떡 한 덩어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기드온의 지금 심정은 어땠을까요? 7년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모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삼만 천칠백 명을 돌려보내시고 삼백 명만 남겨두게 했습니다. 이제 당장 내일 아침 13만 5천 명과 전쟁을 해야 합니다. 한 명이 4백5십 명을 죽여야 승리하는 전쟁이 되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지. 기드온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들어야 마음이 담대해지겠습니까? 낙심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오늘 읽었던 13절 말씀 어떤 사람이 그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친구의 대답을 친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위대함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더라. 기드온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처지를 설명한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볼품 없는 보리떡과 같은 인생이라고 그는 여겼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의 인생을 어떻게 여기고 계십니까? 부족한 것 없이 만족스러우십니까? 우리의 지나온 삶은 어떠했습니까? 아마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 아닙니까?
어쩌면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인생이 보리떡 같이 거칠고 볼품었다는 것을 기드온은 하나님 앞에서 나는 보리떡 같은 인생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그는 알았습니다. 이 보리떡은 기드온의 칼이다. 기도원은 이 말 한마디에 힘을 얻었던 것이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보리떡과 같은 그러한 죄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보리떡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삶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드리는 그러한 인생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할 때에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며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의인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미디안의 장막을, 우리 앞에 주어진 삶의 문제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한번 맺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약하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모든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 앞에 바른 습관을 가지는 한 날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물어버리는 오늘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의 모든 두려움이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보리떡 같은 죄인임을 인정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두려움에서 우리를 건져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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