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역대하 23:1-15
제목: 반역이로다
지금 유다의 왕조는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번도 없었던 왕비가 아달랴라는 엉뚱한 사람이 그것도 스스로 왕이 됩니다. 이 아달랴가 얼마나 유다를 황폐하게 만들어 놨습니까? 한 여인이 모든 나라를 다 망가뜨리고 하나님 대신 바알을 숭배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때에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셨는데요.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제칠년에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 제7년이라는 말은 아달랴가 왕이 된 지 7년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아달랴가 왕이 됐습니까? 아달랴는 자기 아들이 죽은 것을 보면 보통 이러면 어머니는 오열을 하고 슬퍼하게 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이 아달랴는 이제 아들 왕이 죽었으니까? 남은 왕의 씨를 다 죽이고 내가 왕을 해야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죠? 이 아달랴가 누구의 집 사람이라고 했습니까? 바로 북이스라엘의 최고 악당인 아합의 집의 생각이라고 그랬죠. 지금 아달랴는 다윗의 집으로 시집을 왔는데도그의 뼛속까지 아합의 집 사람이었던 겁니다.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그 명령을 이어가서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백성이 아니라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다 죽여버려서 라도 내가 다 가질 거야 이런 할머니가 손자들을 죽이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습니다.
어제 본문인 11절에서 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아의 아들 요아스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 그러니까 지금 어머니 아달랴가 모든 손주를 죽일 때 그때 아달랴의 딸이죠 아달랴와 여호람 사이에서 낳은 딸인 여호사브앗이라고 하는 이 딸이 자기의 조카를 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요아스 이 요아스가 이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유다 왕의 씨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12절 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6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델라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그리고는 오늘 본문에서 제7년에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내일 본문인 24장 1절을 보시면 이 요아스가 7살에 즉위를 합니다. 그러니 성전에 6년을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몇 세에? 고모가 요아스를 빼낸 겁니까? 한 살 때죠 왜 이 한 살이 왜 중요하냐면 성도님들 지난 22장 2절을 보시면 “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년 동안 다스리니라.” 아하시야는 1년을 다스렸습니다. 이 1년이 왜 중요합니까? 그 1년 동안 뭘 한 겁니까? 아하시야가 요아스를 낳았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1년 왕 할 거면 뭐 하러 왕을 하나 그냥 하지 말지. 그런데 하나님이 왜 아하시야를 왕위에 세우셨습니까? 오차가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아하시야가 없었으면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했던 등불 꺼지지 않는 등불을 주리라는 약속은 허망하게 끝나는 거죠.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은 아하시야를 왕으로 세우셨고 그 1년 동안 요아스를 낳는 것 그게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등불을 이어가는 다윗 왕조의 씨앗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이렇게 완벽한 것입니다.
이 요아스를 구하는데 혼자 구한 것이 아닙니다. 22장 11절에 마지막에 보면 여호사브앗이 누구냐 하면 여호람 왕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요 그리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데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더라. 바로 이 여호사브앗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지금 제사장 여호야다와 함께 이 일을 했다는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여호야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오늘 23장 1절에 드디어 용기를 내어 등장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딸,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주 폭정을 일삼는 최고의 악녀 아달랴가 왕 위에 지금 6년째 있었고 7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용기를 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이 여호야다는 용기를 내어서 뭘 합니까? 사람을 모으고 쿠테타를 일으켜 왕궁을 친 게 아닙니다.
그는 힘 있는 백부장들을 모아서 언약을 세웁니다. 3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다윗의 자손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왕자가 즉위하여야 할지니”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다윗 언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어디서 말하는 겁니다. 성전에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왜 성전일까요? 아달랴는 성전에 안 옵니다. 아달랴는 성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이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하스를 성전에 숨겼잖아요.그러니까 성전에 모이기가 좋죠. 게다가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으니까 제사장이 사람들을 불러서 제사하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그러니까 누구도 의심하지 않죠. 성전에서 지도자들을 모아서 거기서 언약을 회복시킵니다.
그러면서 4절 이제 너희는 이와 같이 행하라. 이것이 여호야다가 하나님의 언약을 회복시키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아달랴라고 하는 왕을 끌어내리려고 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를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는 것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바를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서 사람들을 모아서 했던 말입니다.
결국 아달랴는 “반역이로다” 합니다. 아달랴 편에서는 반역이죠? 지금 왕인 아달랴는 왕권을 뺏긴 거니까요?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어떤게 올바른 선택이었을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달랴의 결론은 당연한 겁니다. 이 일에 나중에 듣고 놀라서 뛰어오다가 성전 앞에서 백성들의 손에 죽습니다. 아달랴는 죽고 이들은 요아스를 왕으로 세웁니다. 이들이 하고자 했던 방식은 전적으로 모든 백성이 여호와께 지켜야 할 바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야다는 그리고 요시야는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성도님들 말도 안되는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아멘. 우리의 생각보다 휠씬 큰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이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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