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역대상 16:37-43
제목: 다윗처럼 춤을 출꺼야
지난 금요일 13장에서 살펴 본 것처럼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법궤를 가져오는 데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오는 그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순간에 웃사의 죽음은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있어서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그러니 그 실패는 지금 예루살렘으로 도읍을 옮긴 다윗 왕조에 이스라엘 하나님을 모시는 것을 실패한 것과 다름 없는 아주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된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모실 수 없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진정한 이스라엘로 새로워 지기 위하여 법궤를 옮기는 두 번째 시도를 준비합니다. 첫번째 시도의 실패 이후 법궤는 3개월 동안이나 오벳에돔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요 오벳에돔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다윗은 자신의 왕궁을 정비하고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법궤를 모실 만한 장소를 정성껏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 합니다.
먼저 다윗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는 것은 이 일이 다윗 개인의 소원이나 왕의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소망임을 보여줍니다. 어제 본문인 15장에 여러 차례 나와 있는데요. 2절 레위 사람 외에는 하나님의 궤를 멜수 없나니 4절 레위 사람들을 모으고 13절 “전에는 너희가 메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니” 다윗은 그들에게 레위인들을 불러 특별히 당부합니다. 다윗은 지난번의 실패 원인을 “우리가 그분께 규례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법궤는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들에 의해 옮겨져야 했습니다. 자신들을 성결케 하라는 다윗의 특별한 당부를 따라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 오기 위해 스스로 성결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결하게 구별된 이들이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법궤를 어깨에 메고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전에 법궤를 소들이 끄는 수례로 옮겼던 방식과는 다릅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춘 다윗과 레위인들이 그리고 이스라엘 온 백성이 법궤를 옮기려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시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에 울릴 찬양에 집중합니다. 그는 레위 사람들에게 찬양하는 사람들을 임명하게 하고, 비파, 수금, 제금 등 악기 연주와 더불어 큰 소리로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그나냐’에게 지휘를 맡겨 찬양을 인도하게 하였습니다. 법궤를 모실 장소, 모실 사람들, 그리고 그 기쁨을 노래할 찬양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제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다윗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법궤가 있는 오벳에돔의 집으로 갑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법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법궤를 직접 모셔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드러납니다. 철저한 준비와 어우러진 이스라엘의 열망에 하나님은 법궤를 운반하는 레위 사람들을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레위인들은 무사히 법궤를 옮깁니다. 다윗과 법궤를 옮기는 사람들과 찬양하는 사람들 모두가 말씀대로 베 에봇 우리말로 하면 모시옷 까지 갖추어 입으며 법궤를 옮겨옵니다. 그에 대한 감사로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법궤가 다윗성으로 올라오는 그 영광스러운 순간의 이스라엘의 반응은 열광적입니다. 백성들의 환호성과 각종 악기들의 아름다운 선율이 예루살렘에 가득찹니다. 얼마나 기뻤을 까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다윗은 오늘 함께한 모든 백성들에게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을 나누어 주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고 돌려 보냅니다. 그런데 오늘 역대상 15장의 마지막 구절은 오늘 분위기와는 대조적인 한 사람의 생각을 보여 주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모두가 찬양과 기쁨으로 가득한 그 때에, 다윗 왕이 춤추며 기뻐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를 업신 여긴 사람, 미갈입니다. 역대상에는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지만 사무엘하 6장에서는 다윗이 춤을 추는 모습을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겼다고 합니다. 20절에 이 부분만 보면요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합니다. 그녀는 “사울의 딸”로 실패한 사울 왕가를 상징합니다. 그녀는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그 기쁨의 축제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창밖을 통하여 그 장면을 멀찍이서 보며, 비웃으며 구경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이겁니다. 다윗을 업신여긴 미갈 앞에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하 6장20절과 21절인데요.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1절입니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아멘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다윗이 그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을 얼마나 기뻐하는지, 그것을 하나님이 정하신 규칙대로 하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를 살펴 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미갈로 대표되는 사울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사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닌 오히려 점쟁이와 상의하며 점쟁이의 지도를 받은 사울을 떠올리며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을 기뻐하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법궤를 수도 예루살렘으로 모시는 것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중심에 모시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다윗은 앞서서 그 일에 한번 실패를 경험하였지만, 하나님의 규례를 따름으로 그 일을 기쁨 가운데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임재와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뜻대로 법궤를 옮기는 이들과, 함께 환호를 외치는 이들과, 기쁨으로 춤을 추는 다윗과 같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들과 함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모시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 때문에 기쁨으로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모든 가정과 성도님들이 되길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마음속의 주님의 충만한 임재가 있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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