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가복음 11:12-26
제목: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성도님들이 다 아시는 것처럼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쓰여졌습니다. 이 성경이 독일어로 불어로 영어로 번역되었고 일부는 중국 성경을 일부는 일본어 성경을 바탕으로 외국인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한글 성경이 번역되어 집니다. 한국 초기 선교사로 한국 선교의 사령탑 역할을 맡았던 게일 선교사는 한글 성경을 번역하는 일을 가리키면서 ‘파나마 운하를 하나 파는 것과 맞먹는 일’이라고 평가 했던 것처럼 이 작업은 많은 선교사와 국문학자들 70여명이 10년 이상 걸리는 험난한 일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이수정의 ‘신약마가젼복음셔언해’가 1885년에 존 로스의 ‘예수셩교젼셔’가 1887년 최초로 번역되어 집니다. 그런데 언어는 특수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요한복음 6:35절에 보시면 “생명의 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떡을 모릅니다. 영어로 보면 분명히 브레드 오브 라이프 생명의 빵입니다. 떡집으로 번역된 베들레헴은 빵집이라는 뜻이지 떡집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빵을 구경해 본 적이 없는 조선 사람들을 위해 선교사들은 그와 유사한 떡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낮과 밤이라고 표현하지만 히브리 사람들은 밤이 되고 낮이 되니 라고 표현합니다. 이처럼 한 언어는 다른 언어와의 특수성 때문에. 완벽하게 번역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번역을 전문으로 하시는 한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한 아프리카 부족에 신약성경을 번역하던 중에 요한복음 1장 29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로다” 라는 이 본문을 번역했을 때” 이 선교사님이 무지 고민했던 것이 이 아프리카 부족은 태어나서 양이라고 하는 동물은 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평생 양이라고 하는 동물을 본적이 없는 아프리카 부족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해 봤자. 아무 감동도 이해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민 고민 하다가 번역된 본문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씨암돼지다 라고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부족 사람들은 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정말 중요한 것을 귀중한 것이 희생하셨구나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번역이 가지고 있는 한계요 문제점이자 재미있는 독특성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번역본이라고 하는 한계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성경의 번역과정에 그리고 한글 성경에 임하셔서 지금도 그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함께 해 주시고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을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성경을 사랑하고 읽고 듣고 지키며 살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거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길게 밑밥을 까는 이유를 아시겠죠? 오늘 본문에 나온 무화과 나무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도님들은 무화과 열매 드셔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는 아주 중요한 과일입니다. 마치 한국에서 1월 1일이 되면 떡국을 먹는 것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의 설날에 해당하는 1월 1일인 10월 초 나팔절이 되면 이 생 무화과를 먹으면서 한해를 풍성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무화과는 성경에 구약 40번, 신약 17번이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과일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에 무화과나무가 맨 처음 등장하는 구절이 창세기 3:7절 입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이 만큼 이스라엘과 무화과는 떼 놓을 수 없는 열매입니다. 또 한 구절만 소개해 보면 이사야 38장을 둘 수 있는 데요. 히스기야 왕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는데요 그 때 사용했던 히스기야의 병을 치료할 처방전이 바로 이 무화과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런 내용입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 나무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더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마가복음 11:13-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참 이 본문은 난제 중에 난제라 일컬어 지는 본문입니다. 한글 성경으로 보면 말입니다.
마치 한글 성경으로 보게 되면 이런 뉘앙스를 가지게 됩니다.
갓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가 이제 걷기 시작하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뛰어. 뭐야 넌 아직 뛰지도 못해..
이런 너 같은 거 필요 없어 집 나가버려~
이런 웃기는 일이 오늘 본문에서도 벌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아직 열매 맺을 때가 되지 않았고. 예수님이 성미가 얼마나 급하신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해 버리자 그 무화과 나무가 영원히 말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 드릴려고 성경번역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를 살펴보려면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열매 맺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지중해를 끼고 있으면서 중동지방인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있는 4월부터 초막절이 있는 10월까지 모두 다섯 번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스라엘의 기후는 건기인 여름과 나머지 기간에 해당되는 우기인 겨울로 나누게 됩니다. 6개월 동안의 겨울동안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보낸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다가오면서 조그만 잎사귀와 함께 첫 열매인 무화과를 내고 긴 여름인 6개월 동안 무화과 열매를 다섯 차례 맺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이 본문의 열쇠가 있습니다. 첫 번째 맺는 크기도 작고 영양가도 별고 없고 당도도 떨어지는 첫 번째 무화과를 헬라어로 파게 라고 부르고 나머지 다섯 번 맺는 무화과는 헬라어로 테에나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문화권에 있는 나라에서는 그냥 모두 똑같은 무화과로 번역해 버리게 된 것이 이 본문을 예수님을 성격파탄자로 만들어 버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어로도 이 무화과나무를 파게인 헬라어를 어원으로 한 피그 fig로만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헬라어에 기초하여 다시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이튿날 예수님께서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시장하셨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 나무에 첫 번재 열매인 파게가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예수께서 파게를 찾은 것은 때가 유월절 즈음인 지라 아직 본격적인 무화과 테에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월절 즈음에 잎사귀와 동시에 맺혀야 할 파게를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 나무를 보시고 예수님은 저주하셨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좀더 부연설명하자면 말씀 드린대로 유월절 시작 즈음에 열리는 무화과는 작고 당도도 떨어지는 상품가치가 없는 무화과입니다. 그런데도 주인의 입장에서는 이 무화과 나무는 상품가치가 없음에도 이 처음 익은 열매인 파게를 가만 뒀다가는 그 다음 열매인 테에나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따 주어야만 골치 아픈 것이 바로 이 파게였습니다. 그래서 무화과 주인들이 생각해 낸 방법이 파게 무료개방. 마음껏 따 먹으세요, 테이크 아웃 환영이 라고 써 붙여 놓은 것이 였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4월 겨울이 끝나가고 먹을 것이 없던 우리네 보리고개와 같은 것을 지내고 있던 90%나 되는 가난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맛없는 무화과나무라도 먹으며 허기를 떼우고 겨우네 맛 볼수 없었던 단 과일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파게는 이 가난한 사람들이 모두 먹었던 것이 그 당시의 풍습이였습니다. 따라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 주인 좋고 행인 좋고, 그러므로 어쩌면 무화과는 욕심 많은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과일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베풀며 살라고 주신 것이지만 말입니다. 시장하셨던 예수님과 제자들도 저기 무화과 나무가 있네. 잎을 보고 알았을 것입니다. 지금이 유월절 4일 전이니 아마 저기 가면 파게가 있을 꺼야.. 라는 기대를 가지고 무화과나무에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있어야 할 바로 그 열매가 없었으니 예수님과 제자들의 실망이 상당히 컷을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될 성 부른 나무는 떡 잎부터 안다는 말이 있듯이 유월절 즈음에 잎사귀와 함께 맺어야 할 파게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분명 문제가 있었습니다. 유월절에도 파게를 맺지 못하고 잎만 무성한 이 나무는 긴 여름을 기다려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잘못된 무화과 나무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교훈이 이 무화과 나무에 숨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이 무화과와 포도나무를 이스라엘의 풍요를 상징하는 과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는 농부의 정성에 따라 즉 농부가 얼마나 수고했는지에 따라 그 해 농사의 결과가 결정되는 대표적인 과일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예레미야 24:2절에 보시면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 나무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 나무가 있다고 합니다. 무슨 뜻 입니까?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농부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관심을 주시고 복을 주시고 사랑을 주시면 포도와 무화과나무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은 풍성해지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관심없어 하시고 외면하시면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마지막 5일전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성은 예루살렘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님에는 관심이 없이 장사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화가 나셔서 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라고 말씀하시고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지시고 대신 죽어 주시로 오셨지만 사람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처럼 이 세상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이 무화과는 종말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열매였습니다. 우리는 1월 1일이 새해의 시작이지만 이스라엘의 독특한 월력은 우리나라의 10월에 해당되는 달이 1월 1월입니다. 그러므로 10월이 겨울입니다. 4월부터 열리기 시작한 무화과나무는 10월이 돼서야 마지막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는 6개월간의 긴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화과의 때는 기쁨과 소망이 있을 때를 말합니다. 바로 아직은 그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 종말의 때가 오는 것을 이 무화과를 통해 알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에는 열매가 없었습니다. 무성한 잎만 있고 열매 파게가 없는 무화과는 생명 없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심 없는 그 당시와 지금의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겉만 살아있고 육신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육신은 번영과 평화를 누리고 있지만 영은 죽어 열매 맺지 못하는 구원을 모르는 하나님 백성이 아닌 하나님과는 불화한 많은 사람들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면 그 생명은 열매를 맺습니다. 물론 그 열매가 아직은 영글지 않아서 떫을 쓰도 있습니다. 아직은 상품가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볼품이 없을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면 그 안에 복음의 능력이 십자가 대속의 은혜가 시작되었다면 희미하지만 부족하지만 그리스도인 답게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우리 안에 육적인 것만 가득하다면 그 나무는 육적인 소욕의 것을 악의 열매 만을 맺으며 살 것입니다.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성도님들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사람들입니까? 성령으로 열매 맺는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의 향기를 그리스도 다운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시고 계십니까? 무화과 나무의 때가 한정되어 있는 것처럼.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될 날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 안에 거하십시오. 이 세상 화려한 것들에 솔깃하여 세상의 권세잡은 사탄의 속삭임에 신앙의 양심을 팔지 마시고 우리 주님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성도님들 그리스도인 되십시오. 그래서 우리 주님이 필요하실 때 예수님 이 연약한 것이라도 이 부족하고 덜 익고 덜 영근 상품가치가 없는 저라도 사용해 주세요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가 우리 안에 우리 심천사랑의교회 안에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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