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막9:1-13
제목: 변화산의 은혜
첫째, 주님이 역사하시면 누구나 변화산이 된다.
5절에 베드로가 보고서 “여기가 좋사오니 ”할 정도로 감격적인 변화산의 영광과 임재의 체험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예수님께서 그 산에 오르시고 나서이다. 우리는 그 산을 <변화산>이라고 부르지만, 원래 그 산의 이름은 변화산이 아니었다. 성경에 이름도 나오지 않는 평범한 산이었다. 그런데 그 평범한 산이 유명한 산이 되었다. 이 평범한 산이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유명한 변화산이 되었다. 이 산의 이전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이전 이름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에 어떤 산이었든지, 이제는 변화산이라는 이름이 소중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 산이 변화산이 되었는가? 언제 변화산이 되었는가? 주님이 이 산에 오르시고 나서이다. <주님이 이 산에 역사하시면서>이다. 그때부터 이 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게 되었다. <하늘의 영광을 입은 산>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모하는 산이 되었다. 만약 이 산이 사람이었다면 인생이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겠죠? 평범한 인생에서 영광스러운 인생으로 말이다. 오늘날 변화산이 어디인가? 바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변화산이다.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면 우리가 이전에 어떤 사람이었든지 간에 변화산이 될 수 있다. 삭개오가 그랬고. 남편을 다섯이나 바꾼 사마리아여자가 그랬다. 시몬이 베드로가 되고, 사울이 바울이 되었다. 그 누구라도 주님 앞에 서게 되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든지, 과거는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예수님이 오르신 평범한 산이 변화산이 되는 것처럼, 주님이 만나주신 사람, 주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모두 영적인 변화산이 될수 있다.
둘째, 산위의 삶이 산 아래의 삶을 결정짓는다.
주님의 제자는 12명이었으나, 현재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산위에 있는 제자와 산 아래에 있는 제자. 주님께서 열두 제자 중에 3명만 데리고 가신 이유가 무엇일까? 제 해석은 이렇다. 그들을 편애하시거나, 남은 9명을 차별하셔서 그러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어딜 가든지 자원하여 따라가는 사람이 3명이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저는 주님께서 사람을 차별하는 분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주님은 모든 자를 평등하게 사랑하신다. 단지 주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실 뿐>이다. 2절에 “따로”라는 말은 헬라어로 “홀로 있는, 외로운”이라는 뜻이다. 즉 열 둘 중에 주님을 따라간 사람들은 “오직 그들밖에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주님께서 기도하러 산에 가실 때에 “나와 같이 산기도 하러 갈 사람?” 했을 때, 나도 주님 따라가겠다고, 나도 함께 기도하러 가겠다고 한 사람이 3명밖에 없었다. 눅9:37에 “이튿날 아침”에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것을 보면, 주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신 시간대는 저녁이나 한 밤 중이었을 것이다. 주님께서 피곤한 밤에 높은 산에 기도하러 가실 때, 아마 같이 기도하러 가지 않은 9명의 제자들은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은 것을 오히려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가? 피곤하지만 주님 따라 밤에 산기도 하러 간 3명의 제자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했다. 그러나 산 아래에 있는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함”으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었다. 한쪽은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고 체험하였지만, 다른 쪽은 무력함과 패배감을 경험하였다. 주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승리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주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은혜를 받아야 하는가? 산 아래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은헤를 경험하는 삶을 산 위의 삶이라고 하면, 현실을 살아가는 삶을 산 아래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출17장에 보면, 전쟁은 산 아래의 여호수아가 하고 있었지만, 전쟁의 승패는 산위의 모세에게 달려있었다. 산위의 모세가 손을 들면 산아래의 전쟁이 이기고, 산위의 모세가 손을 내리면 산 아래의 전쟁이 지는 것이다. 산 위의 삶이 산 아래의 삶을 지배한다. 기도하는 것은 산위에 오르는 것처럼 힘들지만, 기도하면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다. 여러분이 기도하실 때마다 여러분이 계신 곳이 변화산이 되길 바라고, 여러분의 심령이 변화산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주의 음성이 들려지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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