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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3-3-13 큐티말씀 -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막2:13-17)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3.03.17 11:40조회 수 12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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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마가복음 2:13-17

제목: 레위를 부르신 예수님 

 

 오늘 말씀인 13절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니라” 금요일 본문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했었죠.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치유하시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가르치시러 오셨습니다. 공생애의 모든 기간동안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크고 적은 무리에게 끊임없이 가르치십니다. 가르침이 있다는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SOT 사역을 아시죠? 요즘 하도 이단이 판쳐서요 정확히 설명을 해야 되는데요. SOT는 스터딩 오알 티칭 가르치거나 배우거나의 약자로 이게 믿는 사람들의 본분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가장 못하는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배우는 겁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가르치셨는데 예수님을 따른다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도무지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이면 족하다. 생각합니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는 생각하는 겁니다. 또 어떤 신비주의에 물든 사람들은 언제 말씀을 차근차근 배워서 하나님을 알수 있냐고 반문합니다. 그냥 직통계시 한방이면 모든 걸 다 알수 있다!~ 이래서 이단들이 등장을 하고 이래서 신사도 운동이 등장을 하는 거죠? 배우지 말고 은사를 받으면 된다. 그런데 어떻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을 깨달음의 은사로 해결하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지속적으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늘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제자양육반과 사랑BEE교육 그리고 일대일 양육을 시작합니다. 교회라고 하는 한자가 가르침 교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데 그리고 가르치시는데 힘쓰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그리고 14절에 오늘 주인공인 레위가 등장을 합니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베드로의 제자인 마가가 쓴 마가복음에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라고 소개하고 있고 마태복음 9장 9절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자기의 이야기를 쓴 마태복음에서는 자신을 '마태'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는 다 레위입니다. 누가복음 5장 27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왜 이랬을까요? 그 이름의 뜻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마태는 레위라는 이름이 챙피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마태라는 이름의 뜻은 '은혜를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마태의 직업은 세리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알패오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마태라는 이름보다는 세리로 살아가는 있는 레위가 촛점입니다. 레위는 야곱의 아들이죠? 혹시 그 이름의 뜻이 뭔지 기억나십니까? 연합하다, 결합하다는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로 연합하게 하는 성전에서 일을 하는 자들이 레위입니다. 그런데 이 레위가 하나님의 일. 피스메이커 화목제물 대신 예수님이 죄인된 인간과 하나님과의 다리 역할을 하는 제사를 준비하는 화목을 위한 결합을 위한 일은 하지 않고 세리 역할만 하고 있기에 예수님은 그 마태 세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쉽게 설명해서 세리가 어떤 사람들입니까? 지금의 세금공무원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세금공무원들은 국가에서 정해진 법률에 의해 국민의 의무인 납세를 관할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세리는 법이 아닌 로마가 정한 세금을 거두는 지금으로치면 친일파와 같은 나라를 팔아먹고 있는 그런 존재들이었습니다.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세금을 거두는 것도 문제인데 정해진게 없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로마가 가버나움에 50달란트를 세금으로 매기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100달란트 200달란트를 거둬들이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난받는 그런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와 창녀들을 가장 저주받은 직업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태도 레위 지파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위해 존재 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성전세를 거두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리 마태가 앉아있는 세관은 '성전'을 의미하는 곳입니다. 당시의 세금인 성전세는 성전을 출입하는 남자라면 누구든지 드려야 하는 세금이었습니다. 이 세금을 가지고 성전을 보수하고 그 성전을 지키고 유지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이 됩니다, 그런데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이 거둬들이는 막대한 성전세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의 배를 불리는데 썼고 그중에 일부는 로마의 정치인들에게 로비하는데 쓰였다고 합니다. 그 만큼 이 제사장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사두새인들의 대우가 좋았다는 뜻입니다. 헤롯 성전이 완성되기전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먹을 것이 없어. 왜요? 아무도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헤롯이 성전을 만들고 나서 이 레위인은 좋은 직업이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밥도 못 얻어 먹을 지경에 처했다가 갑자기 국가공무원이 되어 넉넉한 삯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사장들과 결탁이 되어 지정된 업자에게만 돈을 바꾸고 비둘기와 양을 말도 안되는 가격에 팔아 폭리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상을 엎으시고 내 아버지 집에서 나가라 하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의 표적이 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세관에 앉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케 이르고 있는 죄인 마태를 부르셔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될 레위로써의 제자로써의 일을 주시기 위해 지금 레위 마태를 부르신 것입니다. 레위라 하는 세금을 징수하는 자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헬라어로 호라오 “나를 따르라”하신 것입니다. 그랬더니 레위라 하는 그 마태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병행구절 누가복음 5장 28절에서도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했습니다. 그가 앉아 있던 곳, 세관에서 일어나 따르는데 누가는 그것을 '모든 것을 버리고'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 나오는 네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름에 시몬과 안드레는 그물을 버려두고, 야고보와 요한은 아버지 세베대와 품꾼과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바다를 근거로 살아갔던 그들이 그 바다를 버리고 따라 간 것 같이 레위는 세관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버리고'는 '완전하게 포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레위는 그 세관, 성전에서 모든 것을 완전하게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간 것입니다. 그러니 직장에서 짤렸겠죠? 그 당시 세리는 상당한 고수입이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를 큰 부자라고 표현했었죠? 마태도 굉장한 부자라고 소개를 하는데요. 15절입니다.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마가복음은 그냥 식사자리였다 이렇게 표현했는데요 병행구절인 누가복음5장 29절에서 이 잔치를 이렇게 표현하는데요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마가는 단순히 식사를 하는 자리처럼 기록한 반면 누가는 '큰 잔치를 하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큰 잔치란 말은 환영회 만찬 연회 정도로 결혼식에 버금가는 마을 잔치급의 만찬을 말합니다. 그냥 조용히 마태와 친구들을 불러놓고 밥 먹는 것이었다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시비를 걸지도 않았겠죠? 그러나 잔치가 워낙 커서 모든 마을 사람들이 알고 심지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그 잔치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게 여기서부터 등장을 합니다.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그러자 16절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그 잔치가 벌어진 그 곳에 예수를 따라온 자들은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세리들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들은 절대 이방인들과 원수들과 같이 식사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가족들 친척들 그리고 친한 친구들과만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의 눈에는 예수님이 저들과 식사를 했다는 것은 예수님도 한패라고 생각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즉.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라고 말합니다. 너희 선생님은 저들이 어떤 자들인지 모르는가? 그러므로 너희 선생님도 죄인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17절 인데요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아멘 

 지금 스스로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스스로 진리안에 바르게 서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 예수님의 말에 의하면 이들은 자칭 의인들입니다. 죄가 없다고 하니요 그래서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죄인인 세리들과 예수님을 책망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는 자칭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말하는 병든 자를 부르러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건강한 자여서 의사가 쓸 데 없다고 하는 자들이 병에서 고침받을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냥 자기 고집대로 살다가 죽을 뿐이죠? 난 지금 잘하고 있어서 의사가 필요 없다. 난 의인이다. 난 율법의 요구를 완벽하게 지키고 있는 바리새인이다. 서기관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난 죄인이라 난 환자라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난 병든 자임을 인정하는 죄인들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렇게 죄를 깨달은 자는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자들이고 이러한 자들을 예수님은 부르러 오신 것입니다.

 

 성도님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마태 레위를 부르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에 앉아 스스로 경건하게 살았던 선한 사람이었던 나다나엘만 부르신 것이 아니라 세리였던 마태도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처럼연약한 죄인들을 말입니다. 그래서 마태와 마가 누가가 이 레위를 부르신 장면을 따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우리는 죄인임을 알아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아니 알게 해주셔서 알았습니다. 우리의 영혼의 의사이신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 맡길 때 우리는 나음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예수님이 마태 레위를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는 버리고 일어나 따랐습니다. 말로만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삶 이것이 진정 회개한 삶 구원받은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바로옵기는 그 예수님의 부르심앞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라가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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