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히9:23-28
제목:그리스도의 속죄제사
설교:박진홍장로님
첫째,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제사보다 더 좋은 제물이시다.(23절)
18절-22절까지는 구약의 제사에서 짐승의 피를 통하여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23절에서는 구원을 위해서는 그런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더 좋은 예물이 있어야 함을 말씀한다. 여기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지상에 있는 성소를 의미하고,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하늘의 성소를 의미한다. 지상에 세웠던 모세의 성막은 짐승의 피로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지만, 하늘의 성소는 짐승의 피가 아닌, 더 좋은 예물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오해하시지 말아야 할 것은, 실제로 하나님 나라에도 성소가 있고, 제사가 진행된다는 뜻은 아니다. 하늘의 성소는 정결함이 필요할 정도로 부정하거나 더러운 곳이 아니다. 만약 하늘의 성도도 정결하기 위한 제사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천국에도 부정한 것이나 죄악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늘 성도는 장차 성도들이 들어가야 할 곳이므로, 그곳으로 가게 될 성도들이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켤케 되어야 함을 표현한 것이다. 23절은 지상의 성소에서 드린 희생의 피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드린 피의 효력의 차이를 설명하는 말씀이다. 육신의 정결을 위해서는 짐승의 피로 가능했지만,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는 짐승의 피로 불가능함을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를 죄와 형벌에서 완전히 구원하기 위해서는 짐승의 피로서는 안 되고, 더 좋은 예물, 즉 에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만 가능하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는 완벽한 제사를 드림으로 사명을 성취하셨다.(24절)
24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에 들어가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사 하늘로 승천하신 사건을 말씀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늘에서 오신 분이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늘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는 말은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셨음을 의미한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는 단번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의 속죄를 완성하셨다.(25-27절)
구약의 제사장들은 매년 해마다 지성소에 들어가 다른 짐승의 피를 통해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그러나 26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제사장처럼 하지 않으시고, 세상 끝에 나타나셔서 단번에 자기 몸을 들려 대속의 역사를 완성하셨다. 여기서 “세상 끝에 나타나셨다”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아닌, 초림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율법시대의 끝에 오셨고, 그가 오심으로 말세, 곧 종말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단 한 번의 희생으로 모든 죄와 형벌을 끊어버리고자 율법의 마지막 시대에 오신 것이다.
27절은 우리가 잘 아는 구절로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 구절의 핵심은 죽음이 아닌, 심판에 있다. 다시 말해서,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은 두 번 죽는데, 한번은 <육신의 사망>이고, 또 한 번은 <영원한 사망>이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죽음은 <둘째 사망>이다. 왜냐하면 둘째 사망은 “죄 값으로 인한 사망”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 죽음으로서 죄 값을 치를 수 없다. 27절이 <인간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면, 28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죽음이고, 인간으로 하여금 심판을 피하게 하는 죽음”이었다. 2천년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사는 완벽한 제사였다. 그러므로 더 이상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실 필요가 없다. 28절에 “죄와 상관없이”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초림 때에 단 한 번의 제사로 완벽하게 영원히 죄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이 완벽함을 확신하고, 누구도 우리를 죄로 인해 고발하거나 정죄할 수 없다는 구원의 확신, 죄사함의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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