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왕하19:1-19
제목:인생이 어려울 때
첫째,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남유다는 왕이 책임지는 나라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나라이다. 그러므로 위기가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유다왕이 취할 최선의 태도인 것이다. 그런데 히스기야는 유다가 하나님의 땅이요,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땅이라는 것을 잊고, 자기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왕하18:13-16) 했다가, 돈으로도 위기가 해결되지 않자, 비로소 살아계신 하나님을 붙잡게 되었다. 4절에 히스기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을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란,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란 뜻이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실을 멀리서 보고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간섭하시고, 돌보시고 책임지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결국이 무엇? 답이 없기에 낙심하게 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은 <성도가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할 대상이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인생이 어려울 때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눈을 들어 살아계신 하나님만 바라보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를 돌보시고 책임지실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기도로 맡기는 삶을 사시길 축원한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한다.
앗수르왕 산헤립은 <하나님을 믿는 너희의 믿음은 헛수고>라고 말한다.(10-13절) 역사를 봐도 그렇고, 현재 상황을 봐도 그렇지 않냐는 것이다. 앗수르왕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을 헛수고라고 말하는 이유는, 지금 현재 유다가 앗수르의 손에 의해 멸망당하기 직전의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산헤립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신이 유다를 구원할 수 없음을 확신하고 있다. 왜냐하면, 산헤립의 눈에는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하나님이 유다를 도우신다는 그 어떤 증거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헤립에게 있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가짜 신에 불과하고, 그런 신을 믿는 히스기야는 어리석은 자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어떻게 되었는가? 앗수르왕의 말대로 <믿음은 헛수고>인가? 아니다. 오히려 앗수르군대는 하룻밤 사이에 18만 5천명이나 죽임당하고, 왕도 죽임을 당하였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었는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앗수르 왕의 신복에게 들은 바 나를 모욕하는 말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한 영을 그의 속에 두어 그로 소문을 듣고 그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또 그의 본국에서 그에게 칼에 죽게 하리라”(6-7절) 이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일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하는가?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눈에 보이는 대로만 말하는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반드시 이루어질 말씀을 붙들어야 한다. 그것이 성도가 어려울 때 해야 할 일이다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히스기야는 15절과 19절에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라는 기도를 반복한다. 천하만국에 홀로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님만이 세상의 유일한 신이요, 참된 신”이라는 뜻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구원하시면 천하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게 될 것이라고 기도했다.(19절) 즉, 유다의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가 드러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유다의 위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구하는 기도>였다. 제임스패커는 이런 말을 했다. “기도란 온 열정과 힘을 다해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왜 성도의 삶에 감사와 기쁨과 승리가 없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싸움을 싸우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의 썩어질 영광만 구하다보니, 기쁨도 없고, 감사도 없고, 승리도 없다. 우리의 신앙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고민하셔야 한다. 지금 여러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여러분의 기도는 누구를 위한 기도인가? 우리가 온 힘을 다해 기도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나의 영광과 육신을 위해서인가? 인생이 어려울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 붙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도로 살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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