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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2-7-4 큐티말씀 - 믿는 자여 어이 할꼬(왕하13:14-25)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2.07.06 17:00조회 수 12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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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왕하13:14-25
제목: 믿는 자여 어이 할꼬   

 

 오늘 본문은 엘리사의 마지막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역시 선지자는 선지자인거 같습니다. 선지자는 말로만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그의 행동과 삶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자였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예레미야가 그랬고 이사야가 그랬고 호세아가 그랬던 것처럼 그 일생 동안 수많은 이적을 통해서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만 의지하는 길이 이스라엘의 살길임을 전 삶을 통해 보여주었던 엘리사는 죽으면서도, 또 죽어서도 그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엘리사의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다시 한번 찾게 되길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이 이렇게 시작을 하는데요 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찾아와서 울며 말합니다. 14절입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아시는 것처럼 그동안 엘리사가 있었기에 감히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이 이스라엘을 침범하지 못했는데. 침범했어도 그 작전과 계략을 속속들이 알아내서 왕에게 알려주는 통해. ‘심지어 왕이 침실에서 소근대는 소리까지 엘리사가 알고 있나이다.’ 했던 주변국들이었기에 많은 침략 위기들 속에서도 겨우 버티어왔는데, 엘리사가 죽으면 이제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과 염려의 외침일 것입니다. 이러한 근심속에 있던 요아스에게 친절하게도 엘리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려 줍니다. 15-19절까지는 엘리사가 죽기 전에 직접 말해 준 대답인데요~ "나는 죽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그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며 의지하라. 그것만이 죽은 시체같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살 길이다" 아멘 그러면서 엘리사는 자기 자신이 아닌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만이 "아버지"이시며,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시며, 이스라엘의 "활과 화살"이시며, 이스라엘의 "구원"이시며, 시체처럼 죽은 것 같은 이스라엘을 "회생하여 일으키실 분"이심을 강력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하나님만 의지하고 순종하며 따르라고, 그렇게 생명의 길을 가라고 엘리사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금송아지를 섬기고 있던 북이스라엘의 대표 인물인 요아스가 이 대답을 이해했을까요? 성도님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하나님도 섬기고 금송아지도 섬긴다. 아니 어떻게 교회도 가고 절도 갑니까? 이런 사상을 혼합주의라고 하는데요.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뭐 사실 어제 본문인 유다 왕 요아스도 마찬가지였던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대표자인 요아스 왕의 모습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현 상태가 어떠한 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먼저 15절과 17절을 통해서 엘리사는 활과 화살들이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합니다. 그러니 화살을 잡아 땅에 치라고 합니다. 이미 힌트를 다 줬지요? 여러분 실력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되는데 이게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있는 힘껏 화살을 내려 치라는 겁니다. 화살이 부러질때까지... 힘껏. 계속 계속... 그런데 어떻게 됐습니까? 엘리사가 그 화살들을 집어서 땅을 치라고 했을 때, 요아스가 그것을 믿고,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했다면,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다면, 열 번, 백 번 이라도 화살을 땅에 내려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아스는 그냥 성의 없이 반신반의하면서 꼴랑 세 번만 땅을 치고 그쳤습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노하며 책망합니다. 적어도 대여섯 번이라도 쳤으면 아람은 완전히 진멸할 수 있었을 것인데, 그 절반 정도만 쳤기 때문에, 왕은 아람에 대해 세 번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님들 어제 주일 말씀을 통해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구원해 주시고, 은혜 베푸시길 원하시지만, 무조건 기계적으로 주시는 분이 아니라, 준비된 믿음의 그릇만큼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신앙은 하나님이 다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편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알아서 다 해 주세요 라고 하는 것은 믿은 좋은 것이 아니라 어리석고 미련하고 게으른 것입니다. 왜 요아스 왕은 세 번 밖에 치지 않았습니까? 어제 본문 11절의 평가처럼 요아스 왕 역시 그들의 선조처럼 여로보암의 모든 죄를 떠나지 아니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즉 요아스 역시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혼합주의에 젖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와 소망이 생겨나지 못했고, 그래서 그 은혜와 도우심을 받는 데도 미지근했던 것입니다.
 성경은 늘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하나님만 온전히 의지하지 않으면 결국은 그 영향력으로 인해 하나님만 온전하게 신뢰할 수 없는 반쪽짜리가 될 수 밖에 없고, 그 온전하지 못한 믿음의 그릇만큼 완전하지 못한 도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은 믿음의 그릇 만큼만...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큰 릇 되기실 소원합니다.

 20절입니다. 엘리사가 죽으니 그를 장사하였고 이제 엘리사는 죽었고 왕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있으니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끝장난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형편과 사정을 바라 볼때에는 도저히 희망과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요아스의 연약함을 바라볼 때,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바라볼 때, 우리의 연약함을 바라볼 때는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20-21절은 엘리사가 죽은 후에도 계속해서 대답해 주고 있는 메시지인데요 엘리사가 죽었지만 그의 뼈에 닿은 시체가 살아나게 함으로써 그가 한평생 신뢰해온 생명의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엘리야의 승천을 통해서 보이신 생명의 능력을 엘리사의 시체를 통해서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죽어서도 동일한 내용을 전합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는 죽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그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며 의지하라. 그것만이 죽은 시체같은 이스라엘이 회복되어 살 길이다" 아멘

인간은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에게 처한 환경은 낙담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특별히 오늘 본문 23절에서 보여주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희망과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23절을 살펴보면, 인간은 늘 언약을 어기지만, 늘 변함없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받을 자격이 전혀 없지만, 늘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늘 완악하지만, 그 완악함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늘 연약하지만, 그 연약함을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늘 악하지만, 그 악한 인간을 멸하기를 즐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정말 미운 짓만 골라하지만 그 죄인을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담대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요아스 때의 약속하신 성읍들이 회복 사건을 통해 나타나는 것으로 오늘 본문은 끝이 납니다. 요아스가 그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지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내버려두셔도 되고, 그냥 심판하셔도 되지만, 그래도 신실하게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 오래 참으시는 그 사랑을 보여주며,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니 돌아오라고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시고, 오래참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집나간 자식 기다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바라보며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그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라고 권면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위기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아니 이미 죽었던 우리들을 살리셨습니다. 내 연약함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과 그 은혜를 바라보며 담대히 나아가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능력입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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