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살전2:13-3:4
제목: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
첫째, 말씀이 역사하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기준이며, 법칙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씨뿌리는 비유에서 <씨>는 말씀이고, <밭>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말씀을 듣는데도,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진다. 성경을 읽을 때나, 또는 설교를 들을 때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수용하며 순종하는 사람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합당한 복을 주신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13절) 그런데 맨앞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의 <받다>는 헬라어로 “파랄라본테스”인데,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뒤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에서 <받다>는 “에덱사스데”인데, 이것은 <찬성과 환영의 의미를 가진 주관적인 영접>을 의미한다. 즉 앞의 <받다>는 “귀있는 모든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듣는 것”을 의미하고, 뒤의 <받다>는 “듣는 사람이 자기에게 하는 말로 주관적으로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같은 말씀을 듣는데도 그 말을 무시해도 좋을 하찮은 말로 받아들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감동과 감격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사람이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수용하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히4:12) 신앙생활은 <내 안에서 역사하는 말씀을 따라가는 삶>이어야 한다. 성도는 자기 생각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말씀이 믿는 자안에서 역사하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둘째, 고난을 이겨내는 교회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서 동일한 고난을 받았느니라”(14절) 이 말씀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교회 성도들과 동일한 고난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성경에는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야손의 집을 습격한 사건(행17장) 하나만 소개하고 있지만, 유대인들과 동족들에 의해 많은 고난을 받았다. 그런데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그런 고난속에서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내고 이겨냈다. <진정한 신앙은 고난 속에서 믿음을 지켜내는 것에 있다.> 예수 믿으면 평강과 기쁨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예수 믿으면 고난도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믿음의 길에는 언제나 만사형통만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난을 만나면, 왜 하나님을 믿는데 어려움이 오냐고 의심하며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에는 반드시 고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은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만약 모든 것이 만사형통하면, 어려움이 없는데 왜 주님을 의지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려움이 없으면 더 주님을 잘 믿고 더 많이 의지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허락하시며, 또한 고난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 상급과 영광도 주신다. 신앙의 길에는 항상 만사형통, 평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과 어려움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을 계산하셔야 한다. 때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도 있을 수 있다. 때로는 답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도는 어떤 상황속에서도 믿음의 퇴보가 있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모든 고난은 손해가 아니라, 유익을 위해서 성도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난 앞에서 절망이 아닌, 믿음으로 반응하는 성도가 되라.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