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출2:1-10
제목:갈대상자에 담긴 삶
오늘 본문에 모세가 태어난 때는 절망의 시대였다. 애굽의 바로는 이스라엘의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명령을 내렸다. ‘여자를 낳으면 살려주고 남자를 낳으면 나일 강에 던져라.’그 명령이 시행되고 있을 때 모세가 태어났다. 모세의 아버지는 아므람이고 어머니는 요게벳이었다. 그들은 아들을 낳았지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아들을 나일 강에 던져 넣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2절에 “아이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달을 숨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생겼다>는 말을 히브리원문으로 찾아보니 “토브”이다. 토브는 “좋다. 선하다. 아름답다”는 뜻이다. 창세기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할 때 “좋았더라”가 “토브”이다. 그러므로 모세가 잘생긴 것을 보았다는 말은, 외모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행7:20) 모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였다는 말씀이다. 여러분의 자녀를 바라볼 때, 그냥 바라보면 안되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란다. 모세의 부모는 석달을 더 키우다가 더 이상 아기를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모세의 부모가 선택한 것은 <아기의 삶을 송두리째 주님께 맡기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기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기 위해 갈대상자에 만들었다.
그러나 사실 갈대상자에 아기를 담아 흘려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선택과 결정이었을 수 있다. 나일 강의 물살에 갈대 상자가 뒤집힐 수도 있고, 나일 강에 서식하는 악어들에 의해 삼켜질 수도 있는 예측 불허의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갈대상자는 <절망의 상자>였다. 그러나 그 갈대상자는 <하나님의 손에 맡겨진 것>이었다. 하나님께 맡겨진 순간부터 하나님이 주관하셨다. 그래서 그 갈대상자는 <방향을 조절하는 키>도 없고, <속도를 조절하는 노>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으로 인도되었다. 그게 어디인가? <바로의 딸>에게까지 흘러간 것이다. 요게벳이 자신의 아들을 갈대상자에 넣어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순간, 바로의 왕궁에 있던 공주는 갑자기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고, 목욕하러 나일강에 나오게 되었고, 거기서 갈대상자에 담긴 아기 모세를 발견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공주의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넣어주셔서 아기를 자기의 양자로 삼게 되고, 놀랍게도 친엄마인 요게벳이 모세를 젖먹이는 사람으로 고용되어 돈도 받고, 모세도 키우는 신기하고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 이 모든 상황은 하나님께 맡김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갈대 상자>라는 단어는 히브리로 ‘테베’라고 하는데, 창세기의 홍수에 등장하는 <방주>가 히브리어로 “테베”이다. 수천 마리의 동물을 실은 커다란 노아의 방주와, 작은 아기를 담은 작은 갈대 상자의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동력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방주와 갈대상자는 방향을 정하는 키도 없고, 속도를 조절하는 노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흘러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갈대 상자는 하나님의 목적이 이뤄질 때까지 절대로 뒤집히지 않았다. 바람에 흔들리고, 물결에 뒤집힐 것처럼 보였겠지만, 갈대상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목적지를 향해서,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으로 흘러갔다. 올해 2022년에도 우리는 우리를 흔드는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물살을 만나게 될 수 있다. 물질의 문제가 파도처럼 다가와 가정을 뒤집으려고 할 수도 있고, 건강의 문제가, 자녀의 문제가 우리를 뒤집으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간절히 축복하는데, 우리의 모든 걱정, 근심, 염려, 불안, 두려움을 갈대상자에 담아 하나님의 손에 맡기시기를 바란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돌보시고 책임지신다. 우리의 삶을 갈대상자에 담아 하나님의 손에 맡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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