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2:1-14
제목 : 헤세드를 베풀어 주소서
유명한 말씀입니다. 여리고에 사는 라합을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제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최소 200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편에 두고 여리고와 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1절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냈습니다. 자기 때는 12명을 보냈지만 지금 시간이 없는지라. 그리고 12명을 보냈다가는 저번처럼 의견이 다를까봐 또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다가는 눈에 뜨일께 뻔하므로 믿을 만한 사람 두 사람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전권을 줍니다. 어떻게 아느냐? 라합과의 약속을 여호수아에게 묻지 않고 스스로 결정합니다. 그정도로 믿을 만한 사람 둘을 보낸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들이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라합이라고 하는 여자의 직업이 기생이라고 성경에 쓰였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라합은 기생이 아니다. 이렇게 주장해 보려고 그 당시 시대적 문화적 문헌들을 찾아서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유다의 며느리 다말이 창녀로 분장해서 자기 시아버지와 간음했던 장면을 기억하시면서 다말에서서 썼던 창녀라는 단어를 동일하게 라합에게도 분명히 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요 부분은 뒤에 다시 다루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리고성을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작은 성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고고학의 자료에 의하면 성곽에는 2중으로 성벽이 있었고 그 성벽 위에 마차가 다닐 정도로 큰 길이 있었고 라합의 집이 있을 정도로 그 성은 매우 튼튼하고 큰 성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성벽 위에 집이 있을 수 있냐? 예전 저희 신혼집이 남산2터널 위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충분이 이해가 됩니다. 또 제가 예전에 중국 시안에 있는 장안성에 갔을 때 함께 같던 선교사님이 이 장안성이 마치 여리고성과 같은 규모라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성 위에 자동차가 두 대가 다니고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성이였습니다. 그 큰 성 여리고에 이스라엘 정탐꾼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2절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지금은 전쟁을 앞두고 있던 때 였습니다. 여리고 왕도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사건을 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도 불기둥과 물기둥으로 사막에서 물을 내시는 여호와의 전능하심으로 아모리 두 왕 시혼과 옥을 전멸 시킨 일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경계 상태가 최고조입니다. 게다가 여리고가 얼마나 왕권이 강하고 군사력이 강한지 성경은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즉각적인 보고가 이루어지고 즉각적인 명령에 의해 군사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여리고는 강한성이였습니다. 여리고 왕의 명령대로 라합의 집을 찾아온 병사들은 라합의 거짓말대로 ‘여기 있었으나 저기로 갔다’ 지금 쫓아가면 가서 잡을 수 있다. 7절을 보면 뒤쫓는 자가 나가자 성문이 닫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라합이 상당히 지혜로왔음을 알 수 있는 본문입니다. 시편 136장에 나오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 여기서 "인자하심"에 해당되는 히브리어가 헤세드(חסדי)인데 "하나님이 맹세하심으로 말미암아 변치않는 불변의 사랑"을 의미하는 단어가 헤세드입니다. 그런데 사전에 이 헤세드를 찾아보면 이런 뜻이 있습니다. “진실하심 신실하심 보호하심 배려하심 약속하심 지켜주심 은혜 베푸심 친절하심 등등..” 무려 16가지나 됩니다. 암튼 좋은건 다 헤세드입니다. 영어로는 스윗트 카인들리. 달콤한 친절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이런 단어로도 부족한 완전 특혜 특별한 은혜임을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이 헤세드입니다. 그러니까 이 라합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헤세드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단한 믿음 아닙니까? 이방인입니다. 기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듣고 나서 그 하나님께 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라합에게 헤세드를 베풀어 주사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믿음의 조상 행함의 조상이 되는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성도님들 혹시 이 본문을 보면서 그래도 나는 이방인이 아니네? 나는 기생처럼 불의한 사람이 아냐? 라고 생각하시는 어리석은 분은 없으시죠? 성경의 이야기는 그리고 오늘 이 라합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성도님들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조선 땅에 헤세드가 없었으면 지금도 우상숭배의 나라로. 이 중국 심천에 심천사랑의교회가 없었다면 이 영적으로 어두운 나라에서 빛이 없어 방황하는 그저 그런 죄인임에 지나지 않았을 멸망 받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헤세드를 부어 주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그 말씀대로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과 권세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은혜를 기념하는 성탄절 전날입니다. 우리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인 헤세드가 필요합니다. 이 은혜를 소중하게 여기며 은혜를 감사할줄 아는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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