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이사야 4:1-6
제목 : 그날이 오면
이사야의 말씀에는 징계와 회복의 말씀이 함께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같이 나오다 보니까 헷갈립니다. 이게 어디까지가 심판이고, 어디부터가 회복인지가 헷갈립니다. 너무 자주 심판과 회복, 회복과 심판이 반복해서 등장을 합니다. 너무나 끔찍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또 갑자기 회복이 되고 또 인간의 죄악이 또 나오다가 갑자기 회복이 됩니다. 인간의 죄악이 끝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웬만큼 가면 끝날 것 같은데 인간의 죄악성은 계속됩니다. 그 당시에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계로 망했으면 남유다라도 정신을 차려야 되는데 남유다의 왕들과 백성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에 다른 세력들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을 의지하면서 어떻게든 나라를 유지해보려고 하는 그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구약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래서 범죄한 인간이 겪게 될 우리의 삶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날에 우리를 살리실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이사야의 전체 주제입니다. 오늘본문인 4장 1절 말씀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 옷을 입으리니 다만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게 하여 우리가 수치를 면하게 하라 하리라 그날은 어떤 날인가요 그날이 바로 심판의 날입니다. 심판의 날 하나님이 우리 이스라엘 백성을 또한 우리들을 심판하시는 그날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제발 우리 남편이 되어달라고 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남자들이 전쟁으로 포로로 끌려가서 다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을 배역한 하나님을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전쟁이 끊임없이 찾아올 텐데 이 전쟁 중에 장정은 칼에 죽고 용사는 전란에 망해서 남자들이 이제 다 죽을 거란 말입니다. 우리가 히브리 개념에서 신의 숫자 하나님의 숫자가 3이고요 인간의 숫자가 4입니다. 두 개를 더해 놓은 7은 완전 수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여자라는 말은 모든 여자라는 말이에요. 모든 여자들이 남자가 없어서 제발 한 남자만 발견하면 그 남자가 제대로 됐든 제대로 못 됐든 부족하든 관계없이 남자만 있으면 무조건 나를 당신 아내로 삼아달라고 한다는 겁니다. 우리를 부양하지 않아도 좋다고 우리가 우리 떡을 먹고 우리 옷을 입을 테니까 당신의 이름만 우리에게 빌려달라고 내가 당신 아내인 것으로 하자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합니다. 그만큼 남자가 없다. 다 죽었을 것이다. 그만큼 큰 심판이 임함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겉은 멀쩡한데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빠진 인간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를 찬양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버린 인간들은 하나님 없이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그것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다가 심판날에 되어서야 깨닫게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2절도 ’그날에‘ 라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날은 1절과 다른 날입니다. 그런데 같은 날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1절에 나온 그 날은요 심판의 날인데요. 2절에 나오는 그날은 회복의 날입니다. 이 두 날은 같은 날입니다. 우리에게 임하는 그 심판의 때가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키는 때라는 겁니다. 그래서 심판과 구원은 한 번에 임합니다. 그날에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는 구원의 날이 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 자는 그날은 심판의 날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2절에 ‘그날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 날’ 그 구원의 때 회복의 때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여호와의 싹 성도님들 우리는 여호와라고 하는 말이 나오면 그때부터 모든 것은 반전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사야는요 계속해서 인간의 추악함과 인간의 죄악과 거기에 반대되는 여호와의 일하심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이사야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여호와의 싹 여기서 말하는 싹은 뭡니까? 겨우 내내 얼어 있다가 죽은 것 같은 땅에서 가지에서 피어오르는 새로운 싹을 말합니다. 그러니 놀랍죠? 굳어버린 죽어버린 가지에서 피어나는 싹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나님이 행하실 새로운 일 그러면서 놀라운 일 그러면서 살리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간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새로운 싹이 타오를 것인데 그 여호와의 싹이 바로 누굽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그 여호와의 싹이 터 오를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그 일이 이사야 53장에 소개 되어 있습니다. 2절부터인데요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렇게 잘 설명하고 있는 본문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분!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피 흘려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 귀한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을 뭐라고 표현합니까?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라고 말합니다. 연한 순 너무너무 약해서. 그냥 누가 한번 밟고 지나가면 금방 죽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연한 순이 어디를 뚫고 나왔습니까?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왔단 말입니다. 얼어붙은 가지를 죽어버린 가지를 뚫고 나왔단 말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뚫고 일어나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보시는 것처럼 1절과 2절 심판 날과 구원의 날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즉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 인간의 심판을 막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합니까? 여호와께서 하시는 겁니다. 어찌 보면 우리가 망하는 것은요 그냥 두면 망합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해 주지 않으면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두면
인간이란, 존재는 그 마음과 생각과 행동과 모든 말까지 다 타락했기 때문에 그냥 망하고 맙니다. 여러분들이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아무 말도 안하시면 됩니다. 절대로 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이런 애기 안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알아서 멸망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자동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망해 가는 인간을 구원하는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마음이 힘들고 몸이 힘들지만 아니 힘들다 못해 괴롭지만 말씀을 듣고 마음이 깨어지고 괴로워하는 과정을 통해 그러한 와중에도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이사야에서의 가장 중점이고 핵심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일 것입니다. 바라옵기는 이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반응하는 우리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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