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이사야 2:1-22
제목 : 말씀이기에
우리는 그제 어제 1장에서 절망적인 상태에서 이사야를 시작했습니다. 소도 주인을 알고 나귀도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하나님을 모르냐? 왜 온 몸이 망신창이가 됐음에도 다 죽어가면서도 왜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느냐? 왜 하나님을 떠나 홀로 남았느냐? 이렇게 이사야가 가슴 절절하게 말하는 장면이 어제 본문 1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장 1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1절입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여기서 말씀. 말씀이라는 단어가 따바르입니다. 말씀이라는 이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루신다. 그리고 일. 해픈 발생하다 라는 뜻입니다.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에 일이라는 명사로 대체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걸 히브리 사람들은 강조하고 있는거죠. 1장에서는 지금의 망가진 이스라엘의 상태를 보면서 빨리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서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요 2장에서는 회복을 말씀하시면서 이것은 따바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일이다.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이렇게 선포하는게 오늘의 말씀입니다.
2절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말일에. 이 말일은 마지막 때를 말합니다. 흔히들 마지막 때란 종말만을 생각합니다만 성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세주로 탄생하는 날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를 마지막 때라고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대림절 첫째주를 보내고 있는 우리들이 지금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고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끝날 겁니다. 그래서 2장에서는 말일이라는 단어를 12절에서 만군의 여호와의 날/17절에서 보면 그날에 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이 말들이 다 같은 마지막 날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고대하는 날/어떤 사람들은 고대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날 그 때가 올 것인데. 그날이 바로 2절에서 말씀하시는 말일이라는 말입니다. 그 말일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2절 계속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이스라엘에서 산이라고 하면 그냥 시온산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서울의 산 이러면 흔히 남산이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아시는 것처럼 시온산은 실제로 높은 산이 아닙니다. 그냥 서울에 있는 남산같은 그런 높이에 있는 동내 산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산은 히말라야에 있는 에베레스트산이겠죠? 8800미터가 넘는다고 하죠? 그런데 그 시온산이 모든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지진이 나서 시온산이 높아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온산에 가면 뭐가 있습니까? 시온산 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렸던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 시온산이 모든 산 위에 뛰어나게 될 것이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고 합니다. 참 의하하죠? 조금 이상해셔야만 성경을 제대로 보고 계신겁니다. 왜냐하면 이 말이 신약에 있으면 모르겠는데 이사야서가 선포된 이스라엘 시대에는 시온산의 존재를 세상 사람들이 알 리가 없습니다. 아무도 그 산을 몰랐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사람들만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강화도 마니산에서 전국체전 성화를 채송하지만 우리나라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을 아는 외국인들이 있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구세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러므로 시온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사 오늘날 예배죠?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 날이 이미 왔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옴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이 땅 가운데 높아지고 있고 경배를 받고 계시고 그리고 우리에게 전해진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 시온산에서 드렸던 제사 지금의 예배로 인해 우리 예수님과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 당시에는 아무도 여호와에 관심이 없었겠죠? 이사야가 쓰여진 이 당시 높은 산은 “앗수르와 애굽과 바벨론”과 같은 강대국 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곧 망해버릴 조금 있으면 포로로 잡혀갈 이스라엘에 선포되고 있는 예언은 참으로 민망하기 이를 때 없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야는 그걸 알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여기에 힘줘서 따바르 말씀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썼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은 황폐한 도시이지만 다시 예루살렘이 높아지고 다시 시온산이 높아지는 날이 반드시 올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그 말씀이 이루어 졌습니다. 왜요? 메시야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죄의 저주를 끊으시고 이 땅에 우리의 구원주로 오셨기에 그러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가 받은 구원이 바로 오늘 말씀의 정점입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예수님이 오시면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여호와의 전에 오르자 전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야지 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2600년 전에 쓰여진 말씀입니다. 이사야가 2600년 후에 한국 사람들이 그것도 중국에서 그것도 줌이라는 인터넷으로 이 새벽에 모여 여호와의 전에 오르자 하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따바르 이기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될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걸 믿었겠습니까?
에이 설마! 그런일이 어떻게 이루어져? 시온이 예루살렘이 하나님이 예수님이 온 땅에 충만해 진다고? 그걸 어떻게 믿었겠습니까? 포로로 끌려갔거나 끌려 가기전인 망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선포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4절입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판결이라는 샤파트는 왕이 하는 재판을 말합니다. 그날이 오면 이미 오신 예수님의 말일이면....하나님이 이 땅을 통치하시는 그 때가 왔기에 하나님이 왕 되시사 이 땅을 다스리시며 우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고 무기는 죽이는 거죠? 그런데 농기구는 살리는 거죠? 이 땅이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 지면 죽이는 세상이 아닌 살리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일은 아직 이루어져 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졌지만 이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이 사실이 중요합니다.
누굴 통해서요? 바로 우리 교회를 통해서 나를 통해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니 어떻게 살아야 할찌를 하나님께 묻고 어떻게 살아야가 할 지를 결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었어요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내가 예수님을 믿기 전을 생각하면 가능한 일입니까? 예수님도 몰랐지요 성경도 몰랐지요 2000년전에 태어난 목수가 나의 구세주가 된다는 사실이 어떻게 믿어집니까? 그 은혜를 증거하며 나누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성도님들 그날이 언제입니까? 바로 그날이 지금입니다. 이렇게 중국 땅에서 심천 땅에서 온라인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서 구역모임을 통해 수요기도회와 금요기도회로 주일 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지고 있는 이 때가 바로 말일입니다. 대림절을 지내고 있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때가 바로 그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처럼 그날을 기쁨으로 소망하며 복된 대림절을 맞이하시는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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