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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천사랑의교회

2021-11-26 큐티말씀 - 하나님의 열심으로(고후 11:1-15) - 김도완목사

사무간사22021.12.21 11:50조회 수 13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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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후 11:1-15
제목 : 하나님의 열심으로

 

어려운 고린도후서도 이제 거의 끝이 납니다. 신학자들은 11장과 12  장을 “사도바울의 자기자랑” 이라는 제목으로 설명을 하는데요....  어떻게 보면 웃기죠? 사도바울은 고린도 후서 3장에도 5장에도 10장에도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고린도전서를 포함한 여러 서신서에서도 자랑하지 말라!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주장은 이런겁니다. “너희가 받은 구원이 선물인데 그건 너희의 행위와 댓가가 아닌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인데 어떻게 자랑할 수 있겠느냐? 이런 이유로 자랑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는 자랑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자랑 내용이 좀 이상합니다. 1절입니다.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이 본문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서 주석을 보고 원어를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더라구요. 그러다가 송태근목사님이 쓰신 쾌도난마 고린도후서 이런 책이 이런 해석이 있는데요. 그 당시 수사학자들이 주로 쓰던 ‘바보들의 넋두리 용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봤더니 이런 겁니다. 아 미안 우리집에 전용기가 두 대가 있었는데 어제 한 대가 고장이 나서 조금 늦었네? 뭐 이런거? 이 뉘앙스를 아시겠습니까? 난 이번 여름에 바다로 휴가를 갈수 없네? 난 8분에 400만불 짜리 우주 여행을 예약해 났거든? 뭐 이렇게 쓰는 과장법의 형태라고 그러더라구요. 암튼 사도 바울도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사도 바울이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까? 날 때부터 할례를 받은 정통파 유대인이었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에 보면 전 세계 0.98%에 지나지 않은 시민권을 물려줄 수 있는 로마귀족이었고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와 서울대를 졸업한 수재였던 그는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율법에 능통한 바리새인으로 장차 대제사장이 될만한 이스라엘 최고의 인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좀 어리석다. 그러니 날 좀 이해해줘라~ 왜 그렇습니까? 사도 바울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이 사도 바울이 이미 전한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받는 은혜의 구원을 주장했기에 이 사도바울을 향해 사도바울은 좀 문제 있는거 아냐?  뭐가 부족한거 아냐? 어리석은거 아냐? 이렇게 나왔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당시 강연하는 사람들 연설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었습니다. 먹고 살만 했던 그리스 헬라 로마 제국에서는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사람들을 울렸다 웃겠다 하는 연설가들과 철학가들은 아주 좋은 직업이었습니다. 지금의 유트버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꺼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모아 명 연설을 하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비결이었고 이것을 가르치는 학원들 지금의 아카데미들이 그 당시 유행했습니다. 그 당시는 1세기라 마이크 스피커 이런거 없었던 시대에 좋고 우렁찬 목소리와 화려한 수사학과 명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또 과장된 연기력을 동원해서 자기의 이야기를 전하고 그것을 듣는 것 이 그 당시 사람들의 유일한 오락거리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런 풍조에 있던 고린도교회를 향해 세상과 차별을 두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생활비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거짓 교사들이 바울을 시기하면서 바울을 바보라고 어리석다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냥 바울만 바보라고 하면 그만인데. 혹시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문제가 있는거 아냐? 그 복음이 가짜아냐? 자신이 없으니 돈을 못 받지? 양심은 있네! 이렇게 비난하자 사도바울이 자기 입장을 변호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걸 대체 자랑이라고 하는건지? 아휴 바보맞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도바울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의 약함을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지금 바울의 입장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린도 교회는 자기가 개척한 교회입니다. 대체 어느 교회에 이렇게 두 번에 걸쳐 긴 구구절절한 장문의 편지를 썼습니까? 사도바울은 말년에도 이 고린도 교회를 향한 애절한 마음을 여러 차례 드러냅니다. 물론 고린도 교회도 결국에는 바울의 진심을 알아 바울을 위해서 눈이라도 빼줄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던 갈라디아 교회와 함께 바울의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런데 그건 한참 후의 일이고 자기가 개척한 교회 사역자를 향해서 그런데 어휴 저 바보 찌찔하게 가난한 사역자. 축복하고는 거리가 먼 너무나 많은 질병들을 보니. 저 꼬라지를 보니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거 같아~ 라는 비난에도 헤헤 그래 나 바보다. 그러니 느네들이 날 좀 용납해 주라~ 어떻게 이렇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요즘 누가 이런 교회에서 사역하고 싶겠습니까? 비난의 도를 넘어 복음마저 부인하고 거짓 교사들의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행위로 구원받는 다는 거짓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안 해!! 나도 다른 교회가면 환영받거든. 내가 지금 할게 없어서 갈 교회가 없어서 이러는 줄 알아. 이러면서 먼저를 떨어 버리고 관계를 끊을 만도 한데 사도바울은 이런 바보같은 나를 용서해 주게! 이러고 있으니.. 제가 다 속이 타는군요...대체 사도바울은 왜 그랬을까요?

사도바울은 그 이유를 오늘 본문 2절에서 이렇게 소개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우선 여기까지만요 여기서 두 단어를 눈여겨 보셔야 하는 되요 먼저는 하나님의 열심. 열심이라는 단어입니다. 열심은 사전을 찾아보면 열정을 가지고 일을 잘하려는 마음. 이건 우리 단어 뜻이구요. 헬라어 원어로는 이 단어는 질투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지어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할 때 그 질투라는 단어의 헬라의 번역본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다른 신이 내 옆에 내 뒤에 내 좌우에 내 곁에 있는 꼴을 절대 가만히 보지 않으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를 핍박하고 있을 때에 나타나셔서 진노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열심으로 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말할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열심 으로 이스라엘을 질투하사 그들을 징계하시고... 하나님이 열심을 품으셨으니 하나님의 질투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때의 열심히 라는 단어가 바로 이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어가 2절에 등장을 하는데요. 중매하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는 1세기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1세기의 언어와 단어로 쓰여진 서신입니다. 물론 이 편지는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진리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 쓰여졌던 편지이기에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단어로 이해하면 많은 한계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쓰여졌던 그 당시의 언어로 봐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들어 우리는 중매쟁이 하면 어떤 이미지가 있습니까? 뭐 뚜쟁이? 잘  되면 양복한벌? 안되면 빰이 석대? 뭐 이런 이미지가 강하지만 1세기 이 당시의 중매는 누가 하는 겁니까? 부모들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면 아주 유력한 왕이나 귀족들이 쓰는 단어가 이 중매였습니다. 내가 보증설테니 내 가문을 믿고 내 자녀와 저 사람과 결혼해 주게~ 이런 뉘앙스가 중매함이라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부모의 심정으로 이방인의사도된 권위를 가지고 예수님께 고린도 교회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심정으로 고린도교회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합니다. 고린도전서 4:15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린도교회가 아무리 바울을 비난했어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자기가 낳은 부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도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아니 사랑한다는데 뭐라고 하겠습니까? 비난을 받고 욕을 먹고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도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해서 아비의 심정으로 지금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그 누가 사도바울에게 딴지를 걸겠습니까? 그 사도바울이 아비된 심정으로 사랑으로 전하는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 완전하다. 예수님의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엇을 더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14절과 15절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사탄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것이라고 속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사탄은 아주 일을 잘하고 있죠? 한 사람이라도 지옥백성 만들려고 지금도 온갖 섭섭함과 비교와 열등감으로 하나님 주신 은혜를 끊으려고 방해하려고 광명한 천사의 모습을 하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사탄이 피를 뚝뚝 흘리면서 나오면 누가 그에게 속겠습니까? 그러니 광명의 천사로 치장을 하고서는 우리를 속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침투한 거짓교사들은 세상사람이 소망하고 자랑하는 육체의 영광. 성공을 예수 믿는 사람들도 누릴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축복이라고 성경에 없는 이야기들을 해 됩니다. 화려한 수사학으로 인간의 죄된 본성인 칭찬 받고 싶어하는 행위로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는 그 욕심을 자랑케 하고 천사숭배와 영지주의 같은 수많은 이단들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 우상을 숭배하는 하나님의 열심에 위배된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한 하나님의 질투를 유발시킬 만한 일이라고 사도 바울은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그래서 복음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그 어떤 것도 더하거나 뺄수 없습니다. 상식이 아닌 우리의 가치판단이나 세상의 평가가 아닌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대로 우리가 믿고 따르길 소원합니다. 사도바울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기에 작은 비난에도 허허 할수 있는 넉넉한 우리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귀한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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