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민수기 27:1-11
제목: 축복의 통로가 된 슬로브핫의 딸들
성경은 보편타당한 진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여진 그 당시”라고 하는 특수성이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이 대표적으로 그런 예인데요. 오늘 본문을 지금 현대 상황으로 보자면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본문 중 하나입니다. 이걸 보는 안티크리스챤들은 내가 이래서 교회 안다닌 다니까? 이러면서 양성평등법 위반으로 헌법소원을 재기하고 청와대 국민청원가자 뭐 이럴 겁니다. 제가 봐도 좀 여성분들이 억울할꺼는 같습니다. 그런데 이 민수기 이 본문이 쓰여진 것이 BC 1406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500년 경이라고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오늘 본문은 세종실록 1434년(세종16) 4월 26일이 세종대왕이 말씀하신 “여종이 아이를 낳으면 노비 남편에게도 30일간의 휴가를 주어라”라는 충격적인 법과 비교되는 그런 상황일 겁니다. 물론 그 뒤에 자기들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왕들이 이 법을 다 없애버렸지만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버지가 아들 없이 딸만 두고 죽었을 경우에 그 땅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유산 상속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들이 없는 가정은 땅을 상속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이란 사람이 아들 없이 딸만 다섯 명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1절 말씀이 요셉에서부터 슬로브핫의 딸들까지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슬로브핫은 요셉의 아들인 므낫세의 가족이었습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회막 입구에서 모세와 엘르아살과 지도자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호소합니다. 정식으로 재판을 신청했다는 말입니다. 그 내용이 3절인데요 제가 읽겠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슬러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로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던 시기에 일어났던 고라와 반역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자신의 아버지 슬로브핫의 죽음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죽임 당했던 고라 일당의 죽음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3절에 말씀을 근거로 슬로브핫이 죽고 난 후 그의 유산이 그 누군가에게 상속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녀들이 주장하는 것은 4절입니다.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종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이 딸들은 유산을 아들에게만 물려준다면 아들이 없을 경우 그 가문의 유산이 없어져 버리는 당시 이스라엘 상속법이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각 가족에 따라 땅을 분배받게 될 때 자신들도 아버지의 혈족들과 마찬가지로 땅을 분배받아 슬로브핫의 혈통이 아버지의 혈통 가운데 계속 남아 있게 해달라는 재판을 신청한 것입니다.
모세는 이 사연을 하나님께 여쭤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슬로브핫이 딸들의 청원이 정당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받을 유산이 딸들에게로 돌아가게 해 주라고 하나님께서는 명하셨습니다. 물론 전제 조건을 말씀하셨는데요. 상속을 받은 그 딸은 반드시 같은 지파의 남자하고만 결혼해야 한다는 규정이 후에 추가로 주어지기도 합니다. 이는 상속받은 딸이 타지파의 남자와 결혼함으로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배분하신 토지가 다른 지파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였습니다. 또한 9절에서 딸도 없으면 그 유산을 고인의 형제들에게 주라고 말씀합니다. 즉 자녀를 한명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일 경우에는 그의 유산을 그 사람의 형제들에게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자녀를 한 사람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유산도 그 지파 안에서 관리되어 보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조항이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죽은 사람이 형제마저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을 주십니다. 자식도 없고, 형제까지 없는 사람이 죽었을 경우 그의 유산을 그의 아버지의 형제에게 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아버지의 형제마저도 없으면 그 유산을 그의 가문에서 그와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주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상속법은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주신 땅들이 다른 가문이나 다른 지파에게 양도되지 않고 각 지파대로 전수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에 따라 규정되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모든 유산 상속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이 판례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유산 상속 문제를 가지고 먼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회막 문 앞으로 온 것은 여성의 상속을 허락하지 않던 당시 사회적 상황에서 남자가 없는 집안의 유산이 없어지는 큰 난관에 부딪치기 전에 문제를 하나님께 호소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가족의 어려운 형편에 대해 하나님께서 재판장들을 통해 정당한 판결을 내려 주실 것으로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소망했던 대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편견이나 환경의 제약에 치우치지 않은 의로운 판결을 내려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유산을 허락하셨고, 또한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에 아들이 없이 아비가 죽을 경우에도 그 유산이 딸들이나 친족들에게 상속되어 그 가문의 유산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보완 규례를 주셨던 것입니다.
성도님들 한 가지 주의하실 점이 하나 있는데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에서 억욱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해결사와 재판장이 되어 주신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친절하게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2장 14-15절에 이런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물건을 나누고 재판을 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병을 고치시고 오병이어로 우리를 먹이려고 이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요구를 완성하시러 오셨습니다. 이게 헷갈리면 우리에 기도에 가끔(?)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때문에 시험에 들게 분명합니다. 이 슬로브핫의 딸들은 하나님께 바른 것을 구했기에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이런 소소한 문제까지도 구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된다는 사실은 잊지 마시길 소원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자신의 지식과 세상의 지혜를 의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리 말씀이 훈련이 되어 있어도. 순간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역경을 만나면 말씀 보다는 당장의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잘못된 판단을 할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주시는 오늘 말씀이 들리길 소원합니다.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우리가 기도하길 원하시고 기다리고 계시는 우리 아버지이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우리의 문제를 내어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공의롭게 응답하신다는 것을 슬로브핫의 딸들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는 걸 훈련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고생을 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아뢰고 하나님의 지시하심에 따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야 고생을 덜하게 됩니다. 고통을 덜 당하게 됩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내가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이걸 오늘 본문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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