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민수기 5:1-10
제목: 사회적 거리두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사는 모든 부정한 자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정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2절 말씀을 보니 문둥병에 걸린 사람, 유출병이 있는 사람, 이 구절을 쉬운성경으로 찾아보니까 몸에서 고름이나 피가 나는 사람 또 주검 즉 시체를 만짐으로 인해 부정하게 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이 세 가지 부류에 해당하는 모든 부정한 자를 하나도 남김없이 이스라엘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실천함으로 거룩을 유지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소원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진영 안에 사는 부정한 자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진영을 더럽히게 하지 말라 내가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느니라 하시매” 부정한 자들을 진영 밖으로 보내야 하는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분리되다’, ‘구별되다’란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영이 더러운 것들로부터 구별되고 분리되어 있기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진영을 더럽힌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가 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청와대나 백악관에서 대통령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요리사가 설거지가 안 되어 있는 그릇을 내어놓는다면 립스틱 자국이 있는 컵에 음료를 대접한다면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요리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거나 매우 기분이 언짢지 않겠습니까? 기분만 상하겠습니다. 당장... 하물며 거룩하신 하나님 거하시는 진영을 더럽히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부정한 것과의 분리를 통해서 이스라엘 공동체가 성결을 유지할 것을 명령하신 것이죠.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에도 동일하게 적용 됩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 영혼 안에 있는 더러운 죄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름 그대로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따라서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마음 속 부정한 생각들, 죄악된 삶의 습관들을 우리 삶 밖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세상과 구별되고, 악한 것과 분리 되어야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 백성으로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빵이나 과일에 핀 곰팡이를 그대로 놓아 두면, 금새 음식 전체에 곰팡이가 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코로나 델파 바이러스는 14초 만에 다른 사람을 감염시킨다고 합니다. 죄는 그 크기와 상관없이 우리 삶 전체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죄는 발견되면 즉시 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문둥병의 경우도 그냥 내버려 두면 진영 안의 온 백성들을 오염시킬 수 있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러한 병에 걸린 사람은 진영 밖으로 격리 시켜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어 이런 의미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보건당국이 ‘의사들에게 수술을 하기 전 손을 소독하라’고 법으로 명령한지가 채 100년이 안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약 5000년 전에 위생 개념이 하나도 없었을 때부터 하나님은 이런 정결 규칙을 통해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보호하셔 온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음행을 행하는 교인들을 가만히 두고 징계하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교회를 강하게 책망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이 사건에 대해서 고린도 교회를 책망까지 했을까요? 교회는 하나님의 전이며, 그리스도의 몸 입니다. 그 무엇보다 순결을 지켜야 하는 곳이 교회 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음행이란 죄를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죄를 용납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환자의 몸 속에서 암세포를 발견하고도 모른 척하고 덮는 의사는 살인자나 다름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죄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것은 커다란 영혼을 죽이는 범죄 입니다. 죄 지은 것은 반드시 회개해야 하며, 죄악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죄값을 갚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7절 말씀 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이 말씀을 보면 진정한 회개는 두 가지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철저한 자복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단계에서 멈출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서 멈추지 말고, 둘째, 이웃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피해 금액의 20%를 더해서 갚아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자로 치면 굉장히 쎈 거죠? 이것은 죄로 인해 끊어진 상대방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진짜 회개는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회개의 열매로 하는 것입니다. 명나라 화가 대진이라는 사람이 “낙화불반지 복수불반분”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떨어진 꽃잎은 다시 가지에 붙을 수 없고 엎지러진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수 없다.” 우리가 실수 한 것에 대해서 없었던 일처럼 돌이킬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실수로 인해 상대방과의 깨어진 신뢰, 관계가 이전처럼 다시 회복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이 실수하고 잘못한 그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만일 나의 실수, 나의 잘못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이웃이 있으면 찾아가야 합니다. 가서 미안하다고 회개하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배상을 통해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제사 드리다가 이웃과 불화한 것이 있으면 가서 화해하고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 끼리 이러한 진정한 회개가 선행 되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 될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진영 안에 머무는 모든 부정한 것을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고 이야기 합니다. 부정한 것과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거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걸 반대로 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교회를 인생 밖으로 밀어낸 많은 사람들 그러시면 안됩니다. 죄와 거리두기를 하시고 거룩하지 못한 것과 거리두기를 하셔야만 합니다. 진영을 더럽히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진영 안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신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도 거룩함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거룩함을 갖기 위해서는 부정한 것을 밖으로 내보내고 동시에 이미 지은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 보시기에 부정한 것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도 남김 없이 삶의 영역 밖으로 몰아내시고 죄와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루터의 말대로 “새가 우리 머리에 앉을 수는 있지만 우리 머리에 둥지를 틀게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죄가 우리의 삶에 발생할수는 있지만 그 죄를 용납함으로 그 죄가 우리 안에 거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심으로 그 자녀들 또한 거룩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과 구별되는 유일한 것은 거룩.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삶의 터전으로 주신 세상 속에서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죄와 부정한 것으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함으로 거룩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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