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민2:1-34
제목: 광야를 사는 성도의 삶
하나님은 문제투성이의 땅, 도저히 소망을 가질수 없는 광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하셨다. 왜인가?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이다. 광야 40년은 더 이상 애굽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만들기 위한 훈련장소였던 것이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진영의 배치와 행군의 순서를 통해 <광야를 사는 성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씀해주고 있다.
첫째,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셔라.(진의 배치)
광야에서 이스라엘 12지파는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3지파씩 진을 쳤다. 마치 태양계의 모든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듯이, 이스라엘 모든 진영은 회막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자기의 장막을 세울 때, 장막집의 문을 성막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래서 문을 나올 때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성막과 구름기둥, 불기둥이었다. 아침에 장막 문을 열고 나올 때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도록 구조적으로 만든 것이다. 게다가 17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광야를 행군할 때도 성막을 정중앙에 위치하게 하셨다. 왜 이렇게까지 하셨을까? 그 이유는 <언제, 어디서나 성도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진리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문제는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옛 자아와 새 자아, 내가 왕으로 살고 싶어하는 옛 자아와,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싶어하는 새 자아가 서로 싸운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바로 누가 왕이냐를 두고 싸우는 싸움이다. 자기가 왕인 사람은 모든 판단의 중심이 “나”이다. “이것을 하면 나에게 유익이 있는가? 이것을 하면 내가 높아지는가?”를 생각한다. 그러나 성도의 삶의 중심은 언제나 하나님이 계셔야 한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성경 말씀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고, 자기가 삶의 중심인 사람은 그것을 깨뜨려야 한다. 가정의 일이든, 사업이든, 직장의 일이든,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해야 한다. 이스라엘백성이 장막 문을 열면 하나님이 보이도록 했던 것처럼, 우리의 모든 문을 하나님을 향해서 열어놓아야 한다. 가정의 문제를 처리할 때도 순간순간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의 핵심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마음중심에 모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물도 부족하고, 먹을 것도 부족하고, 모든 곳이 부족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의 필요를 신실하게 공급하시고 채워주셨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부족은 왕되시는 하나님이 책임지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둘째, 자기 자리를 이탈하지 말라.(진의 순서)
늘 본문에 보여지는 이스라엘의 진영과 행군을 보면, 각 지파의 위치가 정해져 있었다. 진을 칠 때도 내가 원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리에 진을 쳐야 했다. 행군할 때도 자기 마음대로 출발하면 안되고, 정해진 순서를 따라 행진해야 했다. 무려 40년간 이 위치와 순서는 변하지 않았다. 자리를 바꿀 수 없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진리가 무엇인가? <성도가 지켜야 할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자리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자리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자리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사명>이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쉬운가? 결코 쉽지 않다. 맨앞에 선봉으로 가는 유다지파는 처음에는 좋았겠지만, 40년간 계속 좋았겠는가? 우리는 남의 자리, 남의 위치를 부러워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정해진 자리를 지키라고 요구하신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부러워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의 자리, 아빠의 자리,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 성도의 자리, 목사의 자리가 있다. 어떨 때는 다른 사람의 자리를 부러워하며, 떠나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를 잘 지키는 것이 바로 사명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사람들이 주님을 향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했다. 그러나 주님은 십자가의 자리를 떠나시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 자리를 지키셔야 많은 사람들을 살리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범죄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를 탐내어 자기 자리, 피조물의 자리를 떠나면서 생긴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 시작되는가? 우리가 자기 자리를 믿음으로 지킬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된다. 지금 삶의 광야이고, 모든 것이 부족한 것 투성이고, 문제투성이일지라도 주어진 삶의 자리를 믿음으로 지킴으로 사명 감당하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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