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욥3:1-26
제목:하나님의 주권
첫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원망불평이나 좌절에 빠지면 안 된다.
1-10절은 욥이 자기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내용이다.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2절) 자기가 태어난 날이 아예 사라져 버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4-9절까지의 내용을 보면, 낮과 밤, 빛과 어둠을 대조시키는 표현이 계속 나온다. 낮과 빛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의미하고, 밤과 어둠은 자신이 엄마 뱃속에 잉태된 날을 의미한다. 욥이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자신이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욥의 이러한 고백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다. 왜 나를 태어나게 하셨냐고 원망하며 따지는 것이 아니다. 욥의 고백 속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 남아 있다. “하나님이 위에서 돌아보지 않으셨더라면”(4절)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생명을 주셔서 이 땅에 보내신 분이라는 고백이 들어 있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위에서 돌아보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분, 아무리 힘든 일이 생기고, 마음에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믿음은 우리의 모든 환경과 상황을 주님께서 주관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상황을 만나든, 그 상황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고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믿음을 놓아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도가 모든 상황에서 믿음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라도 믿음 없이 낙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둘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한다.
11-19절에는 욥이 죽음을 동경하는 내용이 나온다. 생일을 저주해도 되돌릴 방법이 없었던 욥은 이제 차라리 죽어서 나왔기를, 즉, 유산되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랬더라면 지금 이렇게 끔찍한 고난을 당하지 않고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죽음이야말로 고난으로부터 탈출하는 해방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죽기를 원하는 욥의 입에서 나오는 신앙고백이 무엇인가? “어찌하여 고난 당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으며 마음이 아픈 자에게 생명을 주셨는고”(20절)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은 왜 고난당하는 자기에게 여전히 빛을 주시며 생명을 주시냐는 것이다. 극심한 고난중에 있는 사람에게 빛과 생명이 주시는 분이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21-22절에 욥은 죽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23절을 표준새번역으로 보면 “어찌하여 하나님은 길 잃은 사람을 붙잡아 놓으시고, 사방으로 그 길을 막으시는가?” 욥은 죽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방으로 둘러싸 보호하심으로 죽지 못하게 하신다는 뜻이다. 여러분, 욥은 극심한 고난 중에도 죽기를 원하지만, 결국 그는 자기가 끝을 내려고 하지 않는다. 제가 목회하면서 깨닫게 된 진리 중의 하나는 “무슨 일이든지 내가 끝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 시작과 끝의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가 결론을 내려고 하면 안 된다. 주님이 결론을 내실 때까지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정을 시작할 때나, 또는 사업을 시작할 때나 그 시작을 하나님으로 시작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 마지막 역시 하나님이 끝을 내게 하셔야 된다. 힘들다고 내가 마지막을 만들면 절대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없다. 환경이 어렵다고 내가 마지막을 만들면 우리의 마지막을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며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복을 경험할 수 없게 된다. 신앙은 하나님이 마지막을 만드실 때까지 믿음으로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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