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요12:1-11
제목:주님을 위한 헌신
첫째, 은혜받아야 헌신이 헌신답게 된다.
본문에 마리아가 주님께 드린 향유는 “나르도 스타키스 자타만시”라는 비싼 향유였다. 이 향유의 가치가 3백데나리온, 우리돈으로 한 병에 천오백만원 정도되는 향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비싼 향유를 바치는 걸로 모자라 자기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씻어드렸다. 마리아가 이처럼 놀라운 헌신을 할수 있었던 원인이 무엇인가?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죽은 오라비를 다시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받은 은혜가 너무 컸기에 3백 데나리온의 가치를 가진 향유를 아낌없이 부을 수 있었던 것이다. 헌신의 동기는 은혜여야 한다. 은혜 받은 자가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나는 은혜받았나? 나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하는가? 나는 신앙생활이 행복한가?> 헌신다운 헌신을 하려면 먼저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한다.
둘째, 순전한 헌신에도 비난은 있다.
마리아의 헌신은 순전한 나드라는 말에 포함되어 있다. “순전한”이란 말은“흠이 없는, 정결한, 최상의”라는 뜻이다. 즉, 마리아의 헌신에는 마음에서 우러난 순수한 마음이 있었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을 하는데도 비난이 있었다. 가룟유다가 마리아의 헌신을 비난했다. 그럴듯한 명분을 가지고 비난했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면서 비난했다. 열심히 봉사하는데도 시험들 일은 생긴다. 교회 안에서는 보통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이 헌신하는 사람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헌신할 때 사람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비난은 언제나 어디서나 있을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의 헌신을 사람은 몰라줘도, 주님은 알아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26:13) 사람은 몰라줘도 주님이 알아주시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헌신한다면 그것은 참된 헌신이 될수 없다. 헌신은 사람의 이해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보다 주님께 인정받는 헌신을 하라.
셋째, 헌신의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8절에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주님을 위한 헌신의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사람은 마리아 오직 한사람뿐이었다. 마리아가 그때 향유를 붓지 않았다면 그에게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속에 유일한 기회였다. 기회가 있을 때 헌신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는 줄로 생각하지만, 사실 <헌신도 다 때가 있다.> 언제가 헌신의 때인가? 주님이 감동주실 때 헌신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헌신의 때를 내가 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헌신은 여유가 아니다. 헌신이라는 말은 헬라어 뜻을 보면 '빨래를 마지막까지 비틀어 짜듯이'이다. 헌신은 여유로 하는게 아니다. 헌신은 내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물질적 여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다. 헌신은 나의 형편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여유가 없을 때라도 주님이 감동주시면 그 때 헌신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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