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43-51
제목: “무화과 나무 아래서”
어제 본문에서 ‘와 보라’ 하신 말씀을 듣고 예수를 따르게 된 시몬 베드로와 형제 안드레에 이어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이어집니다. 43절부터 시작인데요 예수님께서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가 된 빌립이.. 45절인데요.. “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 이르되 '예수님을 만난 감격은 이렇게 연쇄반응을 일으키듯이 전염이 되는 듯 합니다. 우리도 이 예수님을 좀 전하며 살아야 할텐데요...빌립이 나다니엘을 찾아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그러자 빌립이 이와 같이 말합니다.
첫째,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이 말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는 나사렛이 촌 구석 시골이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도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 뭐 이런 말이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에는 한 가지 전설이 전해 내려옵니다. 전설이라기 보다는 미가 5장 2절에 기록된 예언인데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이 예언은 바로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는 전설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10키로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면 그 사람 출신지가 어디야? 이렇게 물어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그가 베들레헴 출신이야? 그럼 그가 혹시 메시야가 아닐까? 라고 물어 보는 것이겠죠?
그래서 나다나엘도 보통 이스라엘 마찬가지로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라고 했던 빌립의 말을 듣고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선한 것은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것처럼 사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누가복음 2장 1절이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그래서 요셉도 다윗의 자손인고로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으로 호적을 하러 갔다가 여관방이 없어 말 구유에서 탄생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자라셨죠? 이 나사렛은 베들레헴에서 한 200킬로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다니엘은 이런 말을 할 만한 충분한 근거가 됐겠죠? 여기서 한 성경말씀이 떠오릅니다. “사무엘상 16:7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그러니 출신이 아닌 환경이 아닌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중심을 보는 우리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못 알아보는 우릴 범하지 않겠죠 우리의 고집과 선입견과 상식과 고집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못 알아보는 못 알아듣는 우를 범하지 않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이런 나다나엘의 오해는 이렇게 풀립니다.
둘째, 무화과 나무 아래서 너를 보았다.
47절인데요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르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예수님께 이런 칭찬받으면 참 좋겠죠? 이런 칭찬받는 우리들 되길 소원합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다시 묻습니다.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그 때 하신 말씀이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느니라”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제가 12년전 북경에 처음가서 가장 놀랬던 것이 거실 등이었습니다. 지금 저희집에서는 나스필 리모컨이 되는 엘이디 등이 두 개나 달려 있지만... 12년 전 거실에는 화장실에서나 쓰는 필라멘트 등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 주인한테 등을 좀 바꿔 달라고 했더니 집 주인이 그러더라구요? 왜 그러냐고? 그래서 책을 좀 봐야한다 했더니. 책은 낮에 보라고 하고 가더라구요. 2000년전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예전 그림에 있는 이스라엘 집들을 보신적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은 태양이 강한 지역이라 집을 반지하 처럼 어둠고 캄캄한 구조로 되어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 전등이 없었던 옛날에 사람들은 책을 읽으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겠죠? 이 나다나엘도 나가서 책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탈무드에 따르면 나무 중 묵상하기 제일 좋은 나무는 잎이 크고 향기가 가득한 무화과나무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 나다나엘이 밖으로 나가서 예수님께 선하고 착한 참 이스라엘 이라고 칭찬받은 나다나엘이 뭘 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걸 알고 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걸 알고 계셨기에 나다나엘을 참으로 선하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나다나엘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나사렛에서 뭔 메시야가 했던 나다나엘도 그 기도하는 장소를 알고 기도한 시간을 알고 그 기도하는 내용을 알고 계시다는데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데 그 앞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고백합니다. 거기에 대해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제자로 부르시면서 이보다 더 큰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님들 하나님은 우리를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눈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기도제목을 알고 환경과 형편을 아시고 우리보다 우리의 길을 우리의 생각보다 더 좋은 길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숨길게 있을까요? 아니 숨긴다고 숨길 수 있을까요? 오늘 나다나엘의 두 가지 생각을 통해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할 줄 아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