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다니엘 4:28-37
제목: “느브갓네살의 인생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
풀무불 사건을 보고 놀란 느브갓네살 왕은 전세계, 자기의 힘이 미치는 곳에 그곳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조서를 공포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느브갓네살이 하나님을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 많이 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교회에서 대해서 지극히 긍정적입니다. 본인은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교회일을 도와주는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봅니다. 이런 코로나 사태에 교회가 어렵겠다며 관리비를 깍아주는 건물주도 있을 것이고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들 돕는데 쓰라고 자기가 만든 제품이나 물질을 기부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 선의를 베풀고 호의를 베풀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님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만 자기 자녀들만 유독 꼭 찝어서 사랑하시는 편애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아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으십니까? 그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하고 권면드립니다. 그래야 그 놀라운 사랑의 세계에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느브갓네살 왕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배울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첫째,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인생이 됩시다.
토요일 본문인 4장 5절에서 하루는 느브갓네살 왕이 꿈을 꾸게 됩니다. 그 꿈은 무성하고 높게 뻗은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하늘에서 거룩한 자가 와서 그 나무를 베는 흉직한 꿈을 꾸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 한번 꿈을 해석했던 벨드사살이라고 불리는 다니엘에게 꿈 해석을 부탁합니다. 벨드사살이라는 뜻은 바벨론 왕국의 주된 신인 벨의 아들 벨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느브갓네살 왕은 다니엘의 뛰어난 지혜를 보고 이렇게 거창한 이름을 이렇게 지어 주었을 것입니다. 18절에서 이 왕이 다니엘에게 이 꿈을 해석해 달라고 합니다. “내 나라 모든 지혜자가 능히 내게 그 해석을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안에 있음이라” 그러나 그 해석은 짐작하셨겠지만 아주 흉측한 꿈이었습니다. 그 해석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주일 본문인 25절 말씀인데요.
한번 찾아볼까요? 25절입니다.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그리고 다니엘은 27절에서 느브갓네살 왕에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조심할 것을 권면합니다. “그런즉 왕이여 내가 아뢰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사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사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니라”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이 시작됩니다. 28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브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그런데 성도님들 혹시 27절과 28절에 빠진 장면이 있는데 어떤 건지 아시겠습니까? 예전에 초등학교 문제에 이런 거 있잖아요. 다음 그림을 보고 생각해 볼수 있는 빠진 이야기는? 뭐 이런거요. 성도님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왕이시여 하나님이 왕을 이렇게 내리시고 거의 미친 사람처럼 살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시면 왕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겸손하게 그저 엎드리는 겁니다. 엎드려서 하나님께 구하고 다니엘에게 배우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살겠다는 다짐 내지는 행동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본인의 입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해 놓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는 몸을 쪼겠다고 해 놓고서 정작 본인은 하나님에 말씀에 반응 했다는 장면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들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둘째, 찬양할 대상을 정확히 아는 인생이 됩시다.
오늘 본문을 보면 느브갓네살 왕은 망해도 쌉니다. 30절 이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뭐가 잘못됐습니까? 천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만유의 주재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고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전능자는 느브갓네살 왕이 아니로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자기 나라가 하고 자기의 힘으로 했다고 생각하며 살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그 권세를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그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30절은 이 바벨론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하나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하나님의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라고 했어야 합니다. 성도님들 이게 중요합니다. 찬양할 대상이 잘못되면 망합니다. 이사야 43:21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이것이 우리들의 존재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찬양이란 계속 자랑하는 겁니다. 세상은 자기를 높이는 자기를 자랑하는 자기를 찬양하는 사람들 투성이지만 그중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닌 자기가 아닌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우리의 인생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던 느브갓네살 왕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31절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그래서 32절에서 왕은 소처럼 풀을 먹고 일곱 때를 지납니다. 만왕의 왕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기를 높이는 것은 무슨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이번 성경퀴즈대회 본문인 누가복음에는 어리석은 부자가 등장을 합니다. 농사가 잘되고 장사가 잘되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큰 창고를 하나 더 지어놓고 생각합니다. 내가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2:20에서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 것인데. 자기를 높이는 자를 이사야의 표현대로 하면 나는 내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가는 자를 하나님은 가만두지 않으시겠다고 선전 포고 하시는 장면입니다. 성도님들 수고하고 애쓰셔서 성공하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누구의 은혜인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우리도 어리석은 부자처럼 느브갓네살 왕처럼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나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님들 그러므로 성도들은 찬양할 대상을 내가 높여야 하는 대상을 정확히 아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바라옵기는 이 유혹 많은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로 찬양할 대상을 높여야 대상을 정확히 높이며 제대로 찬양하는성도님들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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