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다니엘 1:1~7
제목: 하나님께 의미있는 성도가 됩시다.
다니엘서의 배경을 잠깐 보자면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다 히스기야 왕 때 바벨론 왕이 보낸 사자들이 유다 왕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보물창고 속에 있는 모든 보물을 바벨론 사신들에게 보여주면서 자랑질을 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그 사실을 알고 히스기야 왕을 책망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왕이 의지하고 왕이 자랑하는 모든 보물들을 바벨론이 다 탈취해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왕의 자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환관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일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에 나오는 말씀들입니다. 다니엘서는 B.C. 530년 경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기간 중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다니엘은 강대국의 포로로 잡혀온 약소민족의 한 젊은 청년에 불과하지만 장차 이스라엘의 회복을 내다보며 하나님이 세상 나라를 그의 뜻대로 통치하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증거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다니엘은 모든 학문과 재주에 뛰어난 학자요 절망적인 시대에 비전을 가진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바벨론과 페르시아 즉, 요즘 이라크와 이란 나라의 양조에 걸쳐 느부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 원년까지 왕궁의 고관직을 지낸 지혜롭고 용기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오늘 다니엘서 첫 장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 있는 성도가 되길 소원합니다.
우리가 첫 번째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을 주께서 하셨다는 것입니다.
2절입니다 “주께서 유다와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그릇 얼마를 그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 세상의 역사가들은 느브갓네살의 업적과 인생을 찬양했지만 성경의 관점은 누가 이 모든 것을 하신 것입니까? 바로 주께서 이십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배반한 음란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갑니다. 이 역사적인 사실 앞에 역사 히스토리 HI STORY 그의 스토리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기록한 저자는 인간의 평가가 아닌 하나님의 관점에서 오늘 성경 다니엘서를 기록합니다. 그 서문에서 주께서~ 라고 하는 이 단어가 바로 이 다니엘서를 설명하는 핵심입니다. 다니엘서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 아니 모든 역사와 인생을 설명하는 유일한 핵심 키가 될 단어입니다. 성도님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을 주께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구원받은 백성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다니엘서를 통해 기억해야 할 두 번째 것은 하나님에 의한 인간의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평가하는 것은 역사학자의 평가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업적도 남은 재물도 아닙니다. 우리 인생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아무리 묘비에 화려한 글자를 세겨 넣는다고 하더라도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평가에 의해 앞으로의 남은 인생이 방향과 질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전 원래 주석이라든지 아님 히브리어 원문을 잘 보지는 않습니다. 안 보는 게 못보는게 맞는 말이겠네요. 그래도 어제는 배경지식을 전해 드리기 위해 설교를 준비하면서 주석과 원문을 좀 살펴 봤습니다. 그러다가 한 히브리어 단어에 꽂혔는데요. 다니엘서 1장에 나와 있는 여러구절에 공통적으로 쓰인 한가지 단어 때문입니다. 그 구절들을 좀 읽어보겠습니다. 혹시 펜이 있으시면 동그라미를 좀 쳐보시길 바랍니다.
먼저 다니엘 1:1을 보시면 오늘 본문이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보)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들의 신전에 가져다가(보)
그 신들의 보물 창고에 두었더라(보)
또 3절입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게 말하여(~하도록)
4절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보)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18절 왕이 말한 대로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느부갓네살 앞으로 데리고 가니(보)
왕이 했던 이런저런 행동을 수십가지 수만가지로 표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웃었다, 울었다, 앉았다, 일어났다, 누웠다, 잠들었다, 쉰다 논다 노래한다 이렇게 많은 표현을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왕이 행하는 모든 행동을 한가지로 표현해 버립니다. 그게 뭐라구요? 바로‘보’라는 단어입니다. 존재한다. 살았다. 이런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왕과 불신자들, 다시말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관련된 것으로 5번에 걸쳐 우리말 성경에서는 다르게 기록한 것을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한 단어로 표현해 버립니다. 단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왕을 볼 때에는 왕앞에 어떤 행동이 일어나고 어떤 일이 있든 간에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들은 한 가지 행동으로만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해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이렇게 보십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왕과 그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이 보시기엔 딱 한가지인 것입니다. 그는 그냥 있었다, 그냥 살았다. 이정도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있는 왕은 하나님 앞에 별 감동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요즘 중고등부 애들이 큐티를 하면서 받는 많은 질문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아니 왜 하나님은 특정 사람에게만 사랑을 몰아 주시냐는 겁니까? 왜 어떤 하나님이 좋아하는 사람은 뭘해도 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관심없는 사람은 뭘해도 안되냐는 겁니다. 애들이 벌써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거 같습니다. 여기에 진리가 있습니다. 성도님들 우리는 우리 인생의 핵심 성공의 비결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저녁 늦게 눕고, 수고의 떡을 먹고 최선을 다해 인생에 성공하기 위해서 여기가고 저기가고 이사람 만나고 저 사람 만나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평가는 어떠냐 하면 하나님이 보실 때 그냥 ‘그는 살고 있다’ 그정도 입니다. 그 느브갓네살은 바벨론이라고 하는 세계 최강국의 왕입니다. 유다 땅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들을 정복했습니다. 그 보물을 가지고 신전에 들어가서 우상을 숭배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자기 종을 삼습니다. 바벨론의 큰 영토를 정복하고 다스리고 큰 일들을, 게다가 이방인들을 포용하는 정책으로 심지어 정복국의 귀족들을 데려다가 공부를 시키고 바벨론의 관리를 삼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의 바벨론이 아닌 미래의 바벨론을 염려하여 각 국의 지혜자들을 모읍니다. 이 만큼 호의적이고 통크게 큰 역사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 그는 아무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 입니다. 그냥 살고 있네 정도입니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관점이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어지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면서 우리가 행하고 우리가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는 그냥 살고 있다’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렇게 취급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위치, 사람의 위치입니다. 다니엘서를 기록한 저자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아 인생이야말로 영원하고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사는 존재구나’ 라는 것을 깨달아 기록한 줄로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런 깨달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그냥 존재하는 것 뿐입니다
그가 크게 보이고 작게 보이고 많이 가진 것처럼 보이고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건강해 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고 잘 나보이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1층 높이나 200층 높이의 빌딩이나 우주에 올라가면 아무것도 아닌 점으로 보입니다. 키가 2미터가 되든 1미터가 되지않든 하나님 앞에서는 다 똑같은 사람이에요. 단지 한 영혼으로 취급받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오늘 이 말씀에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그 인생이 가치가 있지 아니면, 어떤 일을 하던 심지어 나라를 세우고 거룩한 역사를 이루고 거대한 역사를 써 나가도 하나님이 보시기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 인생의 유일한 평가자이신 하나님 앞에 의미있는 성도되길 소망하는 우리들이 되길 원합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