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삿4:1-10
제목: 성도가 슬퍼해야 할 것
찬송: 290장 너희 마음에 슬픔이
2002년~2010년까지 고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동물원에 잡힌 범의 불안, 초조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달아나는 기차가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마찬가지로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가난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질병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사람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정말 슬퍼해야 할 것들이 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무엇을 더 슬퍼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첫째, 고난을 슬퍼하기보다, 죄를 슬퍼하라.
성경을 읽고 공부할 때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다. 본문을 통해 느껴지는 주님의 마음은 슬픔이다.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1절) “또”라는 단어에서 하나님의 아파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반복해서 죄를 짓는 이스라엘을 슬퍼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런데 3절에서 이스라엘이 슬퍼 부르짖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자기 죄 때문인가? 아니다. 가나안왕 야빈 때문에 주어진 고난 때문에 슬피 울며 부르짖는 것이다. <주님은 인간의 죄 때문에 슬퍼하시는데, 인간은 고난 때문에 슬퍼한다.> 지금 여러분을 슬프게 하고 울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분은 기도하시다가 무엇 때문에 우는가? 자기의 죄 때문에 우는가? 아니면 고난 때문에 우는가? 우리는 주로 고난 때문에 슬퍼하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 때문에 슬퍼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보고 슬퍼하신다. 사사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인간이 죄가 아니라, 고난 때문에 슬퍼하는 한, 고난은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다.(7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고치시기 위함>이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매를 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함인가? 정의로운 재판관이 되어서 심판하는 것인가? 아이를 사랑하기에 매를 드는 것이다. 신앙이 어릴 때는 고난을 주신 하나님이 원망스럽다. 하나님께 배신감을 느낀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에 나를 때려서라도 고쳐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오히려 감사한다. 그에게는 고난이 더 이상 고난이 아니며, 시련이 더 이상 시련이 아니다. 오히려 고난당한 것이 유익임을 고백하게 된다. 오늘 신앙의 태도를 바꾸라. 고난을 슬퍼하기보다 죄에 대해 슬퍼하라.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둘째, 상처받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믿음 없음을 슬퍼하라.
여선지자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 군사 만 명을 데리고 가서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군대를 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바락이 뭐라고 하는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8절)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않으면 자기도 안가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드보라의 반응이 무엇인가? “오, 네가 나를 그렇게 의지하다니 사람 보는 눈이 있네.” 이러지 않았다. 뭐라고 하는가?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주겠다.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다.”(9절) 무슨 말인가? 바락을 책망하는 것이다. 왜인가? 바락이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이긴다고 하시면 그건 이기는 것이다.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바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적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신뢰하지 않고, 누구를 신뢰하는가? 선지자 드보라를 신뢰하였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을 더 의지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것을 기뻐하시겠는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은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한다.(렘17:5-8) 그런데 여기서 드보라의 책망을 받은 바락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책망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할까? 성경은 바락이 상처받았을지 아닌지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다. 오직 그가 믿음으로 행하지 않음을 주목한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한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보다 상처가 더 중요한 이슈이다. 상처받으면 믿음이고 뭐고 필요 없다. 상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기억하라. 상처에 매이면 <사사기 인생>이 된다. 흑암 인생이요, 답이 없는 인생이 된다. 그러나 믿음을 붙들고 씨름하면 상처도 별이 되어 유익하게 되고, 승리의 흔적이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상처받는 것을 슬퍼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믿음 없음을 슬퍼하신다. 상처에 매이지 말고, 믿음에 매이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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