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12:1-12
제목: 성도가 조심해야 할 것
고전10:12에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이다. 성도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첫째, 외식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1-3)
주님은 1절에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 누룩은 부풀게 하는 효능이 있다. 본래의 모습보다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외식은 누룩과 같다. 외식은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건하지 않은데 경건한 척, 신앙 좋은 척 연기하는 것이다. 왜 주님은 제자들이 바리새인의 외식에 빠지는 것을 조심하라고 하시는가?
(1)외식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은 불신앙이요, 마귀적인 것이기에, 하나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행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기 소유의 절반이나 교회에 헌금으로 내놓았는데 왜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는가? 다 드리지도 않으면서 다 드린 척, 주님을 속이려 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작은 믿음은 용납하시지만, 거짓 믿음은 미워하신다.
(2)외식은 하나님 앞에서 결국은 다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2절에 <감추인 것>이란 <숨긴 것, 위장한 것, 변장한 것>을 말한다. 거짓말을 하면 지금 당장은 모면할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결국 드러나게 된다. 왜냐하면 3절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다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외식하던 자들은 부끄러움과 더불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오직 “진실과 정직”을 인생의 가치관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하나님께서 진실과 정직으로 사는 자에게 반드시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조심하라.(4-7)
4-5절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라는 말씀이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우리가 머리로는 잘 알지만, 그럼에도 자주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6절의 참새는 당시 이스라엘의 시장에서 매매되는 가장 작은 동물이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작은 참새 한 마리도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즉 성도가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과 어려움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걸 모르시거나 또는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여 성도가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즉 다 알고 계시고, 모두 주님의 섭리와 허락 속에서 진행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7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다 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값싸고 가치없는 참새도 때를 따라 먹이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참새와 비교할수 없이 귀한 너희를 얼마나 더 잘 돌보시겠냐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어야 한다. 시108:13“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그는 우리의 대적들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함으로 두려움에서 벗어나라.
셋째, 성령님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라.(8-12)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순히 말을 통한 입술의 고백만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 동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는 예수를 믿는다고 시인하면 환난과 핍박이 오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복음을 증거할수 있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안다고 인정하신다. 반면, 예수님을 부인하다는 말은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거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과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의미가 좀 다르다. 10절에 주님은 인자(예수님)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다. <부인하는 것>이 예수님을 거역하고 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면, <모독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비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처럼, 무지와 두려움으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죄는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마귀의 힘>을 빌려 행한 것이라고 의도적으로 비방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으로 용서받을 길이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비방(모독)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지와 두려움 때문에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함부로 판단하고 비방함으로 성령이 하시는 일을 모독하면 안된다. 누가 신앙에 관해서, 또는 주님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거든, 서로 권면하여 성령을 거스르는 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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