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9:28-36
제목: 변화산이 요구하는 신앙
첫째, 참 신앙은 나의 원함이 아닌, 주님의 원하심을 붙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3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기도하시는데,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 이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데,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 영광스러운 경험을 한 베드로는 예수님께“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겠다”고 한다. 그런데 33절 하반절에“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한다. 이것은 베드로가 <자기가 하는 말이 뭐가 잘못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 즉 잘못된 말이라는 뜻이다.“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33절) 여기 머무는 것이 자기들에게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금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말씀하시는 대화의 주제가 무엇인가?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하고 있었다.(31절)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그저 자기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만 마음을 두는 것이다. 그 놀라운 체험과 영광스러운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계속 그곳에 머물자고 제안한 것이다. 즉 베드로는 8일 전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22절)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기억에도 없고, 관심도 없는 것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정신없는 말을 하자, 35절에 구름에서 소리가 나길“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엉뚱한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성도는 기분 따라 살지 말고, 말씀 따라 살아야 한다. 어떤 신기한 체험과 경험보다 주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 말씀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의 원함보다 하나님의 원하심을 따라 살게 된다.
둘째, 참 신앙은 오직 예수님만 보이고 예수님만 남는 것이다.
36절“오직 예수만 보이더라”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에서는“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마17:8)고 말씀하신다. 모세도 사라지고, 엘리야도 사라지고, 구름도 사라지고 모든 신비한 것은 다 사라지고, 오직 예수님만 남았고, 예수님만 보였다. 체험은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체험은 수단에 불과하다. 체험에만 매달리면 안되고, 우리 안에 오직 예수님만 크고 선명하게 보여져야 한다. 모세도 중요하고, 엘리야도 중요하지만, 내 신앙에 오직 예수님만 남아야 한다. 왜인가? 예수님만이 성도의 모델이요, 방향이요, 표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금이라면 모세나 엘리야나 신비한 체험은 돌에 불과하다. 돌은 버리고 금만 남아야 한다. 우리가 보고 체험한 어떤 것들이라도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예수님만 남고 사라질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은 체험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함께 하시는 예수님으로 채워져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러 와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다른 것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화려한 예배당에 시선을 빼앗기거나, 또는 장로 권사같은 직분에 시선을 빼앗기거나, 또는 마르다처럼 봉사하는 것에 시선을 빼앗겨 정작 주님을 만나는 일에 소홀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교회를 그저 사람들만의 모임으로 오해하고 착각하게 될 수도 있다. 예수님 외에 그 어느 것에도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시선을 빼앗기면 안된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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