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2:25-39
제목: 신앙의 목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 민족이 다 메시야가 오시기만을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실제로 주님이 오셨을 때 주님을 만나는 영광을 누린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리고 성탄하신 주님을 만난 극소수의 사람들은 놀랍게도 한결같이 주님의 성탄을 진정으로 축하했다. 특별히 본문에 등장하는 시므온이 <메시야를 기다린 신앙의 목적>이 얼마나 당시의 유대인들과 남달랐는지를 나누고자 한다.
첫째, 메시야의 구원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당시 이스라엘의 메시야 대망의 목적은 <지극히 민족적이고 육신적>이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인데, 이스라엘은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영적 메시야가 아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과 육신의 필요를 해결(오병이어 기적)해 줄 수 있는 세속적인 메시야를 원했다. 그러나 시므온은 달랐다. 30절에“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에서 시므온이 말한 <주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실 대속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시므온은 나라의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이스라엘을 로마의 식민지에서 구해줄 메시야가 아니라, 대속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셔야 할 주님의 모습을 본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31절에“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또 32절에“이방을 비추는 빛이요”라는 표현에서 예수님이 이스라엘만을 위한 구세주가 아니라, 세계만민을 위해 오시는 구세주임을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주의 백성 이스라엘”역시 육신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인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시므온의 메시야 구원은 당시 유대인들과 너무나 달랐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줄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시므온은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실 영적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래서 육신적 필요를 해결해 줄 그리스도를 기다렸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 도리어 책망과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기대하는 주의 구원은 육신적인 것인가? 영적인 것인가?
둘째, 메시야의 사역에 대한 생각이 달랐다.
당시 이스라엘사람들이 기대했던 메시야의 사역은 <유토피아와 파라다이스>였다. 즉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메시야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즉 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전능한 능력으로 유대인을 위해 오시는 슈퍼맨과 같은 분이었다. 그래서 메시야가 오시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시고, 마치 에덴동산처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시므온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34절에“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라는 말씀은 이사야 8:14-15“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의 말씀을 반영한 것이다. 즉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지상천국을 위해 오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주가 되시지만, 반대로 그를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오히려 거치는 돌과 걸려넘어지게 하는 반석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또한 34절 하반절에“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는 주님은 끊임없이 유대인들에게 비방과 멸시, 조롱의 대상이 될 것임을 가리킨 표현이다. 그리고 35절에 마리아를 향하여“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는 말씀은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등의 외식적인 죄악들을 드러나게 하심으로 인해 받게 될 배척과 공격 때문에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인데, 그로 인해 어머니 마리아가 당하게 될 심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은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슈퍼맨 사역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 시대의 타락한 성도들과의 전쟁을 위해서 오셨다.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한치의 양보도 없는 전쟁을 하셔야 했다. 그 결과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야 했다. 물론 예수님은 그로 인하여 인류구원사역을 완성하셨지만, 지상천국 건설을 원했던 유대인들은 나라가 망해서 2천년 가까이 유랑민족이 되어야 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은 목적이 서로 달랐기에 예수님은 그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 되셨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우리가 기대하는 주님의 사역은 우리의 육신적 필요를 위한 지상천국 건설인가? 아니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케 하심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 사는 백성이 되게 하는 사역인가? 하나님의 목적과 다른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목적이 일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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