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 2:1-14
제목: 세상 역사를 바라보는 성도의 시각
첫째,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로마제국의 황제가 제국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인구조사(세금징수 목적)를 명령한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의 인구조사는 자기가 태어난 출생지에 가서 받아야만 했다. 그래서 나사렛에 살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는 출생지인 유대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호적명령만 없었다면 요셉과 마리아는 절대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나사렛에 머물렀을 것이다. 왜냐하면 마리아는 만삭의 몸이었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의 거리는 150km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황제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겉으로 볼 때는 분명 황제의 인구조사로 인해 요셉과 마리아는 유대 베들레헴에 억지로 가야만 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700년전 미가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것(미5:2)을 이루시려고, 로마황제의 마음을 감동시켜 호적명령을 내리게 하신 것이다.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세상 역사는 인간의 계산에 의해 만들어지고 주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 흘러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역사 뿐 아니라, 개인의 작은 일까지도 해당된다. 코로나사태로 인하여 교회의 여러 가정들이 국경이 막혀 심천으로 복귀하지 못한 채, 한국의 복귀를 결정하게 되고, 또 코로나사태로 인한 경제적 타격 때문에 다른 도시에 있는 직장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겉으로 볼 때는“어쩔수 없어서, 형편이 이렇게 되어서”라고 생각될 수 있고, 코로나사태에 대해 원망불평이 일어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환경과 형편만 보면, 코로나 때문에 일어난 우연한 일이거나, 또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일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세상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이 모든 일은 <<그리되지 않으면 안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다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일을 만날 때, 결코 눈에 보이는 환경만 바라보고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과 형편일지라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일임을 인정하고, 주어진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순응하기를 힘쓰는 것이 성도의 삶이어야 한다.
둘째, 세상 역사의 주인공은 믿음의 사람이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호적명령을 내리자, 당시 로마제국 안에 존재하던 모든 민족과 나라들은 그 명령을 따라 움직여야 했다. 그 명령 때문에 마리아는 만삭의 몸으로 무려 150km의 길을 가야 했다. 게다가 베들레헴에는 그들이 쉴만한 방 한칸도 없어서, 짐승의 우리에서 아기를 출산해야만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겉으로 볼 때는, 세상 역사의 주인공은 로마황제인 아우구스투스로 보여진다. 그러나 성경은 세상 역사의 주인공이 믿음의 사람임을 말씀한다. 왜인가? 이 모든 것은 요셉과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요,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메시야는 성경의 예언대로 반드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셔야만 했다. 이 사실은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만약 황제의 호적명령이 아니라, 그냥 평상시에 베들레헴에 와서 아기를 출산했다면, 짐승의 우리가 아닌, 편안한 여관방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출산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면 동방박사에 의해 메시야가 베들레헴에 탄생했음을 알게 된 헤롯대왕이 아기를 죽이고자 했을 때, 마리아와 요셉의 신변은 쉽게 노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황제의 호적명령 때문에 베들레헴은 사람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고,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에 여관도 아닌, 짐승우리에서 아기를 낳았기에 요셉과 마리아의 행적이 노출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헤롯왕이 두 살 아래의 모든 아기를 다 죽이라고 한 것은 그들의 행적이 노출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결과적으로 황제의 호적명령 때문에 여관방을 잡지 못한 것, 그래서 짐승의 우리에서 아기를 낳게 된 것은 불평할 상황이 아니라, 천만다행인 상황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당시 세상 모든 역사는 마리아와 요셉을 중심으로 돌아간 것이다. 언제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수를 위해 굴러간 것이 아니었다. 비록 소수지만, 믿음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세상역사는 운영되고 섭리되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모든 역사가 믿음의 사람들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운영됨을 믿고 1)감사하며 살아야 하고, 2)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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