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눅1:5-25
제목: 믿음 없는 의인
첫째, 은혜의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이다.
본문의 핵심은 사가랴의 불신앙이다. 천사가 좋은 소식(복음)을 전하는데도 믿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이상한 점을 느껴야 한다. 성경은 분명 사가랴를 <의인>이라고 칭했다.(6절) 그런데 의인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지 않는 것이다. <의인>인데 <믿지 않는 것>이다. 궁금한 점은, 믿음이 없는데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인됨>은 믿음 없이도 율법을 지키는 행위만으로 되는 것인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의인의 믿음 없음>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정답은 <하나님께서 믿음 없는 우리를 의인으로 보아주시는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믿음 없음>이다. 우리는 믿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애당초 믿음이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믿음의 출발점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자마자 처음부터 하나님을 믿었는가? 아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나서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열심히 노력해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은 우리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사가랴는 겉으로 볼 때는 율법도 잘 지키고 흠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사가랴는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가랴를 벙어리로 만드셨다. 벙어리는 문제있는 사람, 흠이 있는 사람, 장애가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그것은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칭함받는 사가랴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죄인>임을 드러내시기 위함이다. 성도는 본래 믿음 없는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믿음안에 들어온 존재이다. 믿음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나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을 믿고 감사하는 성도가 되라.
둘째, 믿음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이다.
13절에 천사가“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고 말한 것을 보면, 사가랴가 평소에 자식 문제로 기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천사가 전하여 준 소식(13-17절)은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기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가랴는 기쁜 소식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고,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18절) 그 이유는 자기와 자기 아내가 <나이가 많아 늙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가랴가 <상식>에 매여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이가 많으면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상식이 사가랴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사가랴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자녀를 주시겠다는 말씀 앞에서 웃었다. 이유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의 상식의 틀>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상식이라는 틀 안에서 계산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만 받아들이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상식을 초월하는 믿음>을 요구한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 방법은 배를 만들거나 물이 줄어들길 기다리는 상식적인 방법이 아니라, 법궤를 앞세우고 일단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또한 여리고성을 정복하는 방법은 상식적으로 사다리를 만들거나, 또는 공성병기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성을 일곱바퀴를 돌고 함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만약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의 요구가 상식적이지 못하다고 거부했다면 그들은 요단강도 건너지 못하고, 여리고성도 정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믿음은 세상의 상식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계산하는 것이다. 사가랴는 늙었다는 자신의 상황과 조건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했기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상식에 매여 불신앙으로 사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항상 매사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계산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성도가 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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