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검(엡6:101-7)
● 어떤 청년이 신학교 면접을 보는데 질문이“십계명은 성경 어디에 있는가?”답을“성경 맨뒷장”에 있다고 답했다가 불합격/왜 틀렸는지 모르는 학생이 집에 가서 주일학교 교사인 여동생에게 물어봤다. 그러나 여동생 하는말,“바보 아니야? 십계명은 언약궤안에 있잖아.”둘다 모르는 거죠. 십계명에 대한 말씀은 출애굽기 20장에 있다./교회안에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인류역사속에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성경책이라고 한다./성경책은 세계적으로 매년 4억권이 출판된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가장 읽지 않는 책이 성경책이라고 한다./즉 사람들이 성경책을 가지고 있기만 하고, 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조사결과,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서 1주일동안 성경책을 한번이라도 펼쳐보지 않는 사람들이 52%가 넘는다고 한다./그래서 요즘에는 목사가 설교할 때, 성경인물을 너무 많이 이야기하면 안된대요. 왜? 성경을 너무 읽지 않아서 성경의 인물을 모르기 때문이란다./요즘 성도들이 얼마나 성경읽기를 싫어하는지, 성경을 펼쳐보지를 않는단다. 그래서 목사들의 생각은 성경책이 지퍼로 안되어 있으면 좋겠다. 왜? 지퍼를 여는데도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냥 펼치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지퍼까지 있으니까 더 힘들어요./옆:당신얘기하는거요
(전신갑주그림)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 마지막인 성령의 검이다.
전신갑주 중 다른 것들은“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믿음의 방패”이런 식으로 설명하는데, 성령의 검은 좀 다르게 설명한다. 뒤에“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설명이 나온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하실까? 그냥 말씀의 검이라고 해도 되잖아요? 왜 성령의 검이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거나, 또는 들려질 때, 또는 읽혀질 때 성령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말씀은 성령의 검, 성령의 무기이다. 즉 내 힘으로 뭔가를 이루는 무기가 아니다./오늘 새벽에도 말씀드렸지만,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만“받는 것”이다. 이것은 그 능력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청산유수처럼 말씀을 전했다고 사람이 변하는게 아니다. 그래서 와~누구 목사님, 누구 집사님 대단하신 분이야. 그러면 착각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깨닫게 하시고, 변화시키시는 분은 오직 성령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아니다./겔37장에 보면, 에스겔이 말씀을 선포했다고 기적이 일어난 것인가? 에스겔의 능력? 아니다.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일하시어 마른 뼈가 지극히 큰 군대가 되게 하셨다.
==> 여러분, 말씀에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매일성경을 중국에 공급하고 있는 김덕천 목사님을 광조우에서 뵌 적이 있었다. 김덕천 목사님은 원래 젊어서 정신분열증환자였고, 알콜중독자였다. 그는 정신병원에 수시로 들어갔던 분인데, 어느날 호텔에 놓인 유니온성경을 읽고 변화가 되었다. 말씀이 임하자 정신분열증이 떠나가고, 알콜중독에서 해방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의 종인 목사가 되었다. 그는 거라사지방의 귀신들린자 같은 인생이었으나, 말씀을 접하고 정신이 들게 되자, 그는 매일성경을 5천권씩 중국에 전달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말씀만이 우리를 변화시킬수 있다. 성경은 변화의 책이다. 누구든지 말씀을 가까이 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영국의 유명한 웨슬리목사는 이런 글을 남겼다.“피로할 때 성경은 나의 침상이 되었고,/어두울 때 성경은 나의 불빛이 되네./주릴 때에 성경은 나의 만나가 되었고,/두려울 때 성경은 나의 무기가 되었네./일할 때에 성경은 나의 연장이 되었고,/찬양할 때 성경은 나의 악기가 되었네./무지할 때 성경은 나의 교실이 되었고, 위기 때에 성경은 나의 보호자 되었고,/헛발 디뎌 빠질 때 성경은 나의 반석이 되네/세상 떠날 때 성경은 나의 천국 시민권과 상속권이 되리라.”아멘.
==>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 가치로 다가오고 있는가? 말씀 속에서 이런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고 누리고 있는가? 왜 안되는가? 말씀이 내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기 때문이다./히4:12/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은 아주 예리한 칼을 우리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그 칼이 우리안에 들어오면 무슨 일을 할까? 그 칼은 우리 속사람, 우리 마음을 헤집기 시작한다.“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 마음의 생각과 뜻”은 우리의 인격, 생각, 성품 등을 말한다.
말씀은 우리의 내면 전체를 파고 들어간다. 그래서 찔러 쪼갠다. 그 과정은 아프기 짝이 없다. 부끄럽고 화가 나고, 피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말씀을 더 깊이 배우거나 묵상하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잘 견뎌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수술하고 고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사람이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내면의 문제를 고쳐주시고, 수술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침받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 나를 위로해주거나, 또는 즐겁게 해주거나, 또는 내가 원하는 답을 듣기만을 원한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유형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만 그 말씀을 은혜롭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반대로 자기의 마음을 찌르고 아프게 하는 말씀은 은혜로운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우리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말씀도 은혜로운 말씀이다. 우리에게는 그런 말씀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진정 은혜로운 말씀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고치는 말씀이다. /당장은 아프고, 힘들지만, 그 말씀에 나를 맡길 때, 성령님은 우리의 속사람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게 빚어가신다./그러므로 말씀을 들을 때에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골라들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금광에는 금만 있는게 아니다. 금보다 돌이 더 많다. 그러나 광부들은 돌은 버리고 금만 캐낸다. 모든 목사의 설교에는 금도 있고, 돌도 있다. 사람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보니, 자연히 돌이 섞이기 마련이다./그런데 어떤 성도가 좋은 성도인가? 설교에 있는 돌은 다 내어버리고, 언제나 금만 캐내는 성도이다. 그러나 어떤 말씀이 금같은 말씀이고, 어떤 말씀이 돌같은 말씀인가?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이 금같은 말씀인가? 아니다. 나를 책망하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하더라도, 나를 고치고 변화시키는 말씀이 금같은 말씀이다./
==>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인간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교회안에는 말씀을 많이 알고 배운 것같은데, 행동하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고,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왜 그런 것인가? 말씀을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말씀이 그 사람안에 충만하게 역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골3:16-17/주님의 말씀을 우리안에 풍성히 담아야 한다. 만약 말씀이 내안에 풍성하지 못하면 차라리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말씀이 풍성하지 않은데 말을 하면 입술에서 독이 나온다.
●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커피/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오스틴 심스는 직원들에게 '막말'을 일삼는 손님들을 저지하기 위해 새로운 가격표를 제시했다. "커피 한 잔 줘."이런 사람에게 커피값이 5달러(우리돈 5500원)/"커피 한 잔 스몰 사이즈로 주세요."이런 사람에게는 3달러/"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스몰 사이즈로 부탁해요." 이런 사람에게는 1.75달러(1900원)//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만 잘해도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의 속담이다. ==>우리의 말은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성도의 말은 마귀를 대적하는데 사용되어야지, 사람을 넘어뜨리는데 사용되면 안된다. 우리가 사람은 살리고, 마귀는 대적하는 입술을 가지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우리 안에 가득해야 한다.
오늘 새벽에 성도가 신앙생활 잘하는 방법 두가지를 말씀드렸었다. ●첫째, 생각을 해야 한다. 둘째, 생각이 나야 한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유익을 주기 때문이다. 말씀은 우리가 정신을 차리게 도와준다./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 제정신을 차리고 대제사장의 집밖으로 뛰쳐나와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후로부터 닭이 울 때마다 정신을 번쩍 들어서 그때부터 새벽기도를 시작했다는 전설이 있다.(성당십자가위 닭장식)==>말씀이 생각나야 마귀의 유혹에 비틀거리던 사람이 중심을 잡는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몰라도 좋은 것이 아니라 꼭 알아야 하는 것이고, 안 믿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믿어야 하는 것이고, 순종해도 그만, 않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해야만 하는 것이다.
==> 성도 여러분, 사시느라 많이 바쁘시죠? 정말 정신 없으시죠? 말씀 한 구절 묵상할 짬을 내기도 힘드시죠? 저도 다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절대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말씀 없이 살 수 밖에 없다고, 말씀 없이 살아도 된다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탄이 주는 생각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에 한 구절이라도 가슴에 담고 묵상하며 살려고 애쓰라. 그래야 그 바쁜 삶이 바로 세워지고 중심이 잡혀진다./그래야 그 정신없는 삶이 분별력있는 삶이 된다./그래야 우리는 우리 삶과 영혼을 지키는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절대로 말씀이 빠진 삶을 살지 말라. 말씀이 없는 삶을 살지 말라. 매일 말씀의 검을 받으라. 그리고 그 말씀의 검을 꼭 붙잡고 삶의 전쟁터로 나가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검을 손에 쥐고 나아갈 때에, <강력한 말씀의 능력을 누리는 은헤와 복>이 있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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